매일신문

'94정국(6)

연초부터 전국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 일으키며 시작된 1, 2차 행정구역개편파동은 {단행할 수 있는 적기는 올해 뿐이다}는 광범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결국 시간만 끌다가 {룡두사미}가 되고 말았다.그런데 이번에는 지난 3일 전격 발표된 정부조직개편안의 후속조치로 읍면동제를 없애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한 지방조직개편에도 손을 댈 공산이 있다는관측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어 여진은 아직 잠들지 않고 있다.결말이 어떻게 날지 미지수이나 지금까지 행정구역개편이 역대 어느정권도손대지 못했던 난제였다는 점에서 문민이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용기}있는 조치로 긍정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정부측의 미숙한 일처리로 인해 평화롭게 지내온 이웃사이에 감정의 골을 깊게 파놓았고 뒷말을 무수히 만들어낸것등 수많은 문제점을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

우선 1차의 33개 도농통합형 시군통합과 2차의 광역행정구역개편만을 본다면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었음에도 정작 일이 추진되자 갈피를 잡지 못했다.정부출범후 1년간의 {아까운}시간을 허송하고 4개지방선거가 6개월앞으로 닥친 올해 들어서야 이 작업에 손을 댄 것, 그리고 아직 정부일각에서 미련을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두고두고 비판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주민의견조사 결과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소신에 의한 행정을 펴지 못한 것도 룡두사미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일부 지역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한 것과 정치권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영향력만 앞세운 논리도 결국 {하다 마는}형태로 행정구역개편을 주저앉힌 주된 이유 중의 하나다.결과적으로는 1, 2차개편은 33개 도농통합형 통합시만 출범시키는데 성공적이었을뿐 정작 교통통신의 발달로 시대에 맞게 과감한 수술이 불가피했던 기초.1광역행정구역의 본질적이고도 발전적인 개편에는 손을 대는둥 마는둥 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또한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행정구역개편은 1, 2차 추진과정에서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온 지역.집단이기주의를 다시 전면에 등장시켰고 결국감정에 기초한 힘의 논리만이 판을 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이런 우여곡절 끝에 부실하게 단행된 행정구역개편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특히 중서부경남과 울산의 감정대립은 앞으로 풀기 힘든 숙제로 남게 됐다.양쪽의 정치.경제인들은 물론 언론들까지 가세, 원색적인 비난을 시작으로대대적인 항의단을 구성, 상경하는등 감정싸움으로 번진 울산직할시 승격문제는 지금도 양쪽주민들과 문화계에까지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다.대구의 광역화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다 마는 격이 된 대구의 광역화는 대구로 봐서는 형태가 길쭉하게 일그러지고 도심도 한쪽으로 치우치는기형도시를 만들었고 달성군을 떼주게 된 경북도 현 행정구역 형태보다 기초자치단체들이 더 산재된 이상한 형태로 남게됐다.

지방행정조직개편이 이뤄짐에 따라 행정구역마저 다시 손을 대는 {특단의}조치가 단행될 경우 전국이 혁명적인 변화속으로 빠져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이 {혁명} 이상가는 조치는 앞의 2차에 걸친 개편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어서 그 여파는 가히 상상하기 힘들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 읍면동의 폐지만 이뤄지더라도 지방조직의 뿌리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의 연기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어찌됐든 중앙이 가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됐던 지방은, 이제 피할 수 없는대세인 지방자치라는 엄청난 변화의 태풍속에 말려들고 있고 거기에다 근본적인 {틀}마저 변화하는 대지각변동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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