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는 얼음에 새겨 햇볕에 말리겠다' 남미의 노벨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암 투병 중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전자우편으로 당도했다. 경주와 하양을 방문했던 기 소르망은 여행.경험.개방성이 살 길이며 청산해야 할 것은 권위주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두 사람의 메시지를 받고 확인하는 것은 노벨상을 받은 문인이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식인이 정보의 차원이 아닌 깨달음에서 주는 교훈은 평범하다는 것, 우리가 아는 것을 재확인 시켜준다는 것이다.
경주에도 21세기 사이버 문화 토론을 위해 세계 석학들이 수십 명 내한했다. 그 뿐인가. ASEM회의 기간 동안 아시아.유럽의 정상은 물론 민간단체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세계의 활동가와 석학들이 줄줄이 서울을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아셈 민간단체 평화 포럼에 참가하고 이들과 토론하면서 느낀 점은 이러한 토론의 장에 일반 학생과 시민의 참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언어상의 문제,기획 절차상의 어려움 등 때문에 실제 행사에서는 영어를 잘 알거나 또는 그 방면의 전문가와 지식인의 참여로 제한된다. 국민교육과 사회교육이 우리보다 체계화된 일본 또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외국의 석학 또는 지식인을 초청할 때는 가급적 시민들을 많이 참여시키거나 시민들을 위한 공개강좌를 많이 마련하려고 애쓰는 것이 보통이다. 새로운 지식과 경륜을 시민사회의 자원으로 사회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개입하게 된다. 북경여성대회에서 만난 일본인 대학원생 세이코는 영어도 미숙했고 국제회의 경험도 짧아 소극적 참여자로 일관했다. 그런 그녀가 북경여성대회 5년 후를 점검하는 뉴욕의 유엔총회장에 일본 전역에서 모은 주부 250 명을 인솔하고 왔다. 디지털 카메라, 동시 통역기로 무장하고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새롭게 전개되는 세계질서, 여성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일본인 주부들의 배움의 열기는 뉴욕대학의 강연장을 새로운 열기로 메꾸웠다. 먼저 아는 사람이 뒤에 아는 사람을 이끌어 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현재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국제질서는 다면적이다. 무한경쟁.연봉제.효율성.문화적 보편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협동.인권.문화적 특수성을 말하고 있다.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실행하면서, 재정 규모를 축소하는 작은 정부를 IMF가 처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 처방을 따른 나라들은 그 이전 보다 외채 규모가 늘어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고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 보장으로 신뢰를 얻고 있는 강하고 효율적인 정부가 경쟁보다는 협동을 바탕으로 하는 곳에서 효율성과 생산성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 15개국가중 10개국에 시장에 대한 신뢰성 있는 규제를 약속하는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자신의 입장에서 재해석하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패가망신하는 것은 물론 국가 자체의 주권도 보존하기 힘든 현실이다. 정보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분석은 허심탄회한 공론형성, 실사구시적인 지식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지식의 상식적 기반을 일깨우는 것은 지식과 현실, 지식인과 일반시민의 만남의 장이 자주 설 때만 가능하다. 사회교육기관의 토론 내용이 일반 대학의 수준을 웃돌고 시민을 향한 개방강좌가 늘어날 때 공론 형성이 가능한 것이다. 인간노동의 진정한 생산성은 가슴깊이 우러나는 자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경쟁을 통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배우는 것만큼 알고 아는 것만큼 이해하며 이해하는 것만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는 만큼 보호할 수 있다는 세네갈 여성작가 바바리 욤의 말을 모두와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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