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문화, 새로 꽃피우자-(6)시립미술관(하)

미술관은 건물이 중요한 게 아니다. 관람객과의 호흡, 접근성과 운영방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 미술관을 공공기관쯤으로 여기는 사고를 바꿔야 할 때다. 난관에 봉착한 대구시립미술관 건립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훗날 전국적인 명소로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은 발상의 전환밖에 없다.

▨광주·인천시의 마인드

광주시는 2003년 예산에 현대미술관 건립 보상비 10억원을 책정했다. 지난 2일 대구시의회가 대구시립미술관건립 조사비 10억원을 부결시킨 것과 극히 대조적이다.

광주시는 2006년까지 760억원을 들여 전남도청 인근 폐교부지를 활용, 기존 시립미술관(1992년 개관)에 이어 '제2의 미술관'을 짓기로 한 것. 광주시 관계자는 "시민들의 접근성과 활용성을 고려, 도심 한가운데에 선진형 미술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술도시'라는 대구는 예산 및 인식부족 등으로 미술관 건립이 요원한데 반해, 광주는 비엔날레를 치른 감각을 활용해 두개의 미술관을 가진 도시가 될 것 같다.

인천의 경우 수도권의 영향권에 들어 있어 시립미술관이 없다. 그렇지만 개항기 근대건축물을 활용하는 미술 프로젝트가 내년부터 시작돼 관심거리다. 인천시는 1800년대말 구도심인 중구 항동에 건축된 창고, 은행, 우체국 등을 리모델링해 대규모 전시공간, 작업공간을 꾸미기로 했다. 옛 건축물을 그대로 살려 미술공간으로 활용하려는 구상이다. 2005년까지 약 90억원이 투자된다.

▨외국의 첨단 미술관

올 1월 파리에서 문을 연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고풍스러운 멀쩡한 건물을 뜯어 창고(?)처럼 만든 '국립미술관'이다. 운영시간이 낮12시부터 밤12시까지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미술과 함께 놀 수 있는 휴식처다.

시민들은 널찍한 레스토랑에 앉아 먹고 마시다 음악, 패션쇼 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21세기형 미술관의 전형적인 운영방식이다.

재불화가 이영배씨는 "20여년전 지어진 퐁피두센터 미술관을 첨단·미래형이라고 불렀지만, 이젠 대중을 품지 못하는 구형 미술관이 됐다"면서 "똑같은 전시회가 열리면 팔레 드 도쿄의 관람객이 퐁피두보다 3배 이상 많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왕실건물에 들어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쥬 드 팜므를 2,3년내에 개방적인 형태로 바꾸고, 내년부터 폐허 같은 르노자동차 공장(파리 서쪽 센강 섬)의 건물을 그대로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을 만드는 공사에 들어간다.

오래된 맥주공장을 살짝 고쳐 사용한 독일 카셀의 빈딩 라거 맥주공장 미술관과 철강공장지대를 개조한 미국 피츠버그의 매트리스 팩토리 미술관 등은 선진형의 본보기다.

▨시립미술관은 어디에?

부지를 옮길 것을 주장하는 미술인들이 많다. 미술관은 시 외곽으로 차를 타고 가 맘먹고 찾는 애호가나 주말 가족단위 나들이객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언제든 시간을 내 들를 수 있고, 시민생활의 일부분 같은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게 상식.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 이교준씨는 "대구시가 굳이 돈이 없는데도 큼직한 건물을 고집하는 것은 공무원의 틀에 박힌 사고"라면서 "얼마든지 중심가의 시유지나 공장건물 등에서 작은 규모로 수월하게 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미술인들은 중구 태평로 구 담배인삼공사 대구제조창이나 중구 대봉동 구 대구상고 건물 등을 최적지로 꼽고 있다. 기존 건물을 손질해 전시장으로 꾸미면 당장 훌륭한 미술관이 될 수 있다는 것.

대구시 관계자는 "가능성 있는 대안이지만 각각 공원부지와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이해당사자들의 반발, 부지매입비 등이 만만치 않다"고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시민생활권과 멀어질수록 미술관의 효용성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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