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테크노@테크노-(6)타이난 과학단지 전략

짙은 안개로 몇 번의 지연 끝에 타이베이를 떠난 비행기는 40분쯤 지나자 타이난공항에 간단히 도착했다. "타이난과학단지는 아직 건설중이라 특별히 볼 것이 없습니다".

신주과학단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한결같은 만류를 뿌리치고 타이난을 찾은 것은 신주과학단지의 신화가 어떻게 타이난에서 재현되고 있는 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도시 외곽도로를 따라 30~40분쯤 달리자 모습을 드러낸 타이난과학단지는 기반공사를 막 끝나고 새로운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형태였다.

조금 황량하다는 느낌을 들 때마다 부딪치는 공장건물들은-첨단업종의 공장은 사실 사무실형 빌딩에 가깝다-'타이난에는 볼 것이 없다'는 만류가 허풍(?)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랬다.

타이난과학단지는 겨우 계획 기간의 3분의 1이 지났을 뿐인데도 '성공'을 직감할 수 있을 만큼 역동적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신주과학단지의 성공 포인트가 하나씩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효과적 역할분담과 개발전략이 타이난과학단지 조성에 가속도를 붙였다.

타이완 국가과학위원회는 타이난과학단지 개발에 '동시적 처리(concurrent engineering)' 프로그램을 채택했다. 환경평가, 토지수용, 도시계획, 도로·전력·상하수도 건설, 투자 계획과 유치 등 타이난과학단지 조성과 관련된 모든 연구와 계획을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압축적인 개발이 가능하게 된 셈이다.

650ha(195만평) 규모의 하이테크 산업지구 개발은 중앙정부의 몫이지만, 이 지역을 둘러싼 2천ha(600만평)는 타이난 지방정부에 의해 '타이난과학단지시(市) 특별구'로 개발된다. 국내외 우수한 인재를 유치해 첨단산업을 발전시키려면 단순히 공장을 통한 일자리뿐 아니라, 문화와 교육, 레저 등 최고수준의 도시환경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란 사실은 이미 신주과학단지의 경험에서 증명됐기 때문이다.

인구 11만의 '타이난과학단지시 특별구'에는 고급 주거 및 레저시설과 R&D(연구·개발)기관, 각종 금융·상업 시설 및 대형 컨벤션센터 등이 들어선다. 신주의 국가실험고급중학처럼 여기서도 외국인학교는 빠지지 않는다. 외국인 전문가그룹 또는 해외에서 전문성을 키운 우수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그들 자녀를 위한 교육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2001년 9월 중국어와 영어 2개 국어로 가르치는 난커초등학교와 난커중학교가 문을 열었지만, 지금 일본어학교 신설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게 타이난과학단지 관리국 직원의 설명이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타이완과 일본의 산업협력 분위기를 감안한 조치다. 첨단산업 발전의 필수 네트워크인 산·학·연의 원활한 교류·협력을 위해서도 새로운 전략을 채택했다.

천공대를 비롯한 타이완 남부지역 대학과 연구기관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뿐 아니라 제품R&D, 창업보육, 첨단연구장비의 공동활용, 재교육 등을 통괄하는 '산·학·연 개발센터(Center for Industrial-Academic Research and Development)'를 설립키로 한 것.

그러나 타이난과학단지가 혁신을 주도하는 첨단산업단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 자체의 R&D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 이외에 또다른 두뇌집단의 유입은 필수적이다. 새로운 두뇌집단의 유입에 따른 지역 대학, 연구기관간의 협력과 경쟁은 타이난과학단지에 끊임없이 뉴비즈니스 모델을 제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9월 CIC(칩설계센터)가 문을 연 데 이어 ITRI(산업기술연구원) 분원, 바이오테크놀로지 개발센터, 음식산업연구소, 정보산업연구원 등이 타이난과학단지에 잇따라 들어설 예정이다. 타이난과학단지 성공을 위해 유망한 첨단기업의 유치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단지 개발 15년만에 4만여 개의 일자리 창출과 3천여명의 해외 우수인력 유치, 연 39조6천억원의 매출 달성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 전통기업의 첨단화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이런 점에서 타이난 대표적 전통기업이었던 '치 메이'의 변신은 지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 50년전 아크릴 생산기업으로 출발했던 치 메이는 세계 최대 플라스틱 기업으로 성장해 병원과 박물관 등을 거느린 타이난 최대의 치 메이 그룹을 형성했지만, 지난 1998년 플라스틱을 포기하고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를 생산하는 최첨단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전통산업에서 쌓은 경영 노하우와 자본력은 첨단분야에서의 성공도 크게 앞당겼다. 치 메이는 불과 4년만에 일본 기업과의 합병을 통해 세계 4위 LCD 생산업체로 도약했고, 현재 타이난과학단지 전체 직원 1만4천여명 중 37%(5천여명)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500만장의 TFT-LCD를 생산(연매출 약 1조4천600억원)했던 치 메이는 올해 생산량을 1천만장으로 늘릴 계획이다.

타이난과학단지의 중심에는 타이난에서 크고 자란 지역 전통기업이자 최첨단기업인 치 메이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타이난과학단지 관리국 조지 호씨는 "세계 시장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변신, 발전하는 향토기업 치 메이가 있다는 것은 타이난의 자랑"이라며 "단지내의 공장과 시설은 모두 임대로 제공되기 때문에 입주기업은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계획에 따라 항상 재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한 번 첨단기업이 영원한 첨단 기업이 아닌 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기업은 항상 퇴출될 수 있는 것이 타이난과학단지의 운영원칙 중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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