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던져주고 있다. 지난 60, 70년대의 집중 이농 및 도시중심 사회화 첫 세대들이 최근 은퇴를 본격화하면서 이들이 가장 큰 동요를 겪고 있다.
일본에서는 은퇴자들이 예금의 절반 가량을 가져 제로금리 정책 이후 소비를 더 감소시켜 국가 경제 전체의 위축을 초래한 적도 있어, 국내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이자 생활자들 '발동동'=2년 전 섬유업체에서 퇴직한 김성훈(61.대구 대명동)씨는 새해 들어 자가용 운행을 포기했다. 퇴직금 2억원을 예금했지만 한달 이자는 겨우 60만원 안팎. 기름값은 고사하고 커피값도 부담돼 친구마저 피해야 하는 형편이다.
제약업체에 근무하다 지난 96년 퇴직한 이민우(60.대구 태전동)씨는 작년 말 살던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옮겼다. 퇴직금 2억원을 정기예금해 그 이자로 생활했으나 금리가 하락, 예금 액수를 늘려야 하게 됐기때문. 이씨는 그러나 "집까지 팔아 예금을 늘려도 이자수입이 월 100만원이 안된다"고 답답해 했다.
최근 KT에서 퇴직한 이모(57)씨는 "금리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데 돈을 어떻게 굴려야 살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며, "답답해서 퇴직금을 주식.부동산에 투자해 봤지만 그마저 손해만 봤다"고 했다. 사정이 이같이 돌아가자 은퇴 예비자들도 덩달아 불안해 하기는 마찬가지. 올 연말 퇴직을 앞둔 공무원 배석원(60.남구 대명동)씨는 "상당부분은 연금으로 받겠지만 일부 일시불로 받을 돈은 은행에 맡길 수밖에 더 있겠느냐"고 했다.
퇴직을 1년여 남겨둔 최인호(56.경찰공무원)씨는 "딸 결혼자금 때문에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을 생각이었지만 금리가 낮아 연금으로 전환키로 했다"며 "아버지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 착잡하다"고 했다. 공무원 연금관리공단 대구 사무소 김종진 대리는 "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 퇴직공무원들의 연금선택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98년 46.7%에 불과하던 연금 선택 비율이 해마다 10% 이상 증가해 작년에는 79.7%에 달했다"고 밝혔다.
◇장학회들 운영난=1979년 설립된 대구 '금옥장학회'는 240명이던 중.고.대학생 장학금 지급 대상을 작년부터 절반으로 줄였다. 심재협 사무국장은 "1997, 98년 12%나 됐던 금리가 작년 중순 4%대로 떨어지면서 이자수입의 60~70%가 줄었다"며 "출연금을 까먹지 않으려다 보니 지급 인원 축소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대구은행 장학회 황동현 과장은 "이자 수입이 감소해 기금 자체를 늘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금리 하락으로 작년 한 해 이자 수입이 7천만원 줄었다는 것. 이 장학회는 36억여원을 재원으로 매년 155명에게 2억2천만원의 장학금을 줘 왔다.
기금이 10억원인 경북대 사대부중고 (재)군성장학회는 이자 수입이 2천만원 줄자 매년 700만~800만원 주던 장학금을 올 초 400만~500만원으로 줄였다. 대구시 교육청 김무완 평생교육 담당은 "저금리로 장학금 지급 규모를 줄이는 장학회들이 많다"며 "이 때문에 수익사업에 투자하는 장학회도 여러곳 있다"고 했다. 대구시내 장학회는 모두 80개로 이자의 30여%는 운영비로 쓰고 나머지를 장학금으로 주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기획조사팀 하혁진 조사역은 "시중 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계.기업 자금 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공급은 그대로여서 저금리 기조는 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김희호 교수는 "국내의 종전 금리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이었고 앞으로는 금융소득을 기대하기가 더 힘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계명대 경제학과 강태훈 교수는 "최근 저금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유자금을 매월 생활비로 써야하는 50, 60대 퇴직자들이지만 조급해져서 '묻지마 투자'를 해서는 안된다"며 펀드 등 간접투자를 선택해 보도록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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