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검찰 "알 권리보다 국익 우선"

검찰이 진통을 거듭한 끝에 현대상선 대북송금의혹사건의 수사를 유보키로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은 국가기관의 한 주체로서 '국익'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나온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 수사강행에 대한 명분론이 잠재돼 있는데다 한나라당과 시민단체들이 검찰의 이같은 입장정리에 대해 '정치논리에 휘말린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이번 결정으로 인해 자칫 검찰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그간 이번 사건에 대한 법률적용의 어려움, 급변하는 국제정세, 정치권의 국정조사 요구 등 복합적인 변수들을 고려, 사법처리를 전제로 한 수사를 통해 얻어질 실익이 거의 없다고 보고 예상대로 '상식' 선에서 수사방향을 정했다.

유창종 서울지검장은 이와 관련, "검찰 내 여러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본다"며 "검찰 내에서 수사유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이런 결정은 특히 현 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사법심사 곤란' 발언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외교적 파장과 국익을 고려해 진상규명의 주체와 절차, 범위 등은 국회가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정리하면서 급진전됐다.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천명한 노무현 정부로선 대북송금의혹 수사 본격화로 대북관계 급랭과 함께 미국측에 대북 강경노선의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북한핵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각돼 있는 상황에서 대북송금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돌발변수화할 가능성도 검찰로선 우려되는 대목이었다.

특히 청와대와 북한이 대북송금 의혹을 사실상 시인함에 따라 그간 제기된 핵심의혹들에 대한 진상이 대체로 규명돼 검찰수사 대상이 송금방법 및 대북교류 절차상 위법사항 같은 '곁가지'로 국한돼 버린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사를 계속하더라도 관련자들에게 적용할 법규가 마땅찮은 점도 검찰이 수사유보로 돌아서게 된 배경으로 해석된다. 검찰 수사관계자는 "수사의 목적은 '의혹해소'가 아니라 '기소'"라며 "법률검토작업을 병행하고 있으나 현 상황에서는 절차법 위반 외에는 대부분 사법처리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번 결정의 대가로 검찰조직 내부의 비판과 외부 반발에 직면하게 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한나라당 주장대로 특검제가 도입되고 시민단체 및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면 또다시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문제가 거론되면서 검찰의 위상추락과 검찰개혁의 빌미를 가져올 수 있다.

고계현 경실련 정책실장은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검찰본연의 역할에 대한 포기나 다름없다"며 "검찰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편의적으로 결정한 만큼 두고두고 '정치검찰'이라는 멍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 내부에서도 '실체적 진실 규명'이라는 본연의 소명을 다하지 못한 채 정치권 눈치를 살피다 스스로 수사자체를 포기했다는 자성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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