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포럼-대통령의 말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현대상선의 2억달러 대북 송금문제를 놓고 언급한 "남북경협자금으로 사용된 것이라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발언을 듣는 국민의 마음은 참으로 씁쓸하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정국의 흐름이 뒤바뀌는 양상을 보고 노(老)대통령의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3김 정치의 부정적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당은 '검찰의 정치적 고려 없는 철저 수사'나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규명하겠다'든지 하는 진상규명 의지는 어디로 갔는지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면책이라는 고전적 논리를 펴면서'정치적 해결'을 주장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또 신.구 정부의 사이에서 고심하면서도 수사준비를 서두르던 검찰도 '본연의 임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수사유보라는 이상한 꼼수를 두면서 정치권 입맛 맞추기에 나섰다.

결코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그뿐 아니다.

김 대통령은 옷 로비 사건 때도, 아들들이 일으킨 홍3게이트 때도 대통령이 나서 섣불리 결론을 내림으로써 사법질서에 개입했다는 비난을 들어왔는데 이번에도 그런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 아닌지는 대통령이 정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적절치 않다'는 적절치 않은 결론을 내렸다.

김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논란이 일고 있는 통치행위에 대해서 헌법학자등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대북비밀송금=통치행위'를 인정치 않고 있다.

대통령의 말로서는 신중치 못했다.

사실 이 문제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후회처럼 "지난해 문제가 되었을 때 솔직하게 인정했으면 이해를 구하기가 쉬웠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평화비용이냐 돈주고 산 평화냐 하는 논란이 있지만 그래도 국민적 이해를 구했다거나 평화비용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해될 수도 있었던 사안이 아닌가. 그런데 퍼주기라는 비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밀실에서 결정한데다 대선 파장을 우려한 때문이었는지 '절대 아니다'는 부인만 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게다가 민간기업이 준 돈을 통치행위라고 하니 너무 어려운 설명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설화(舌禍)까지 겹친 셈이다.

각 언론에 보도된 설날민심을 봐도 그렇게 나타나 있다.

특히 많은 국민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대통령의 거짓말이었다.

한푼도 뒷거래를 하지 않았다더니 이제 와서 통치행위 운운하면서 면책하려는 것은 국민을 얕보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실 이점에 관한 한 김대통령은 억울한 면은 있다.

'단돈 1달러도 북한에 보내지 않았다'라는 발언이나 '현대상선과 대통령은 무관하다' 등의 각종 부인(否認)발언은 민주당이나 간부들이 한 말이지 대통령이 한 말은 아니다.

그동안 대통령은 침묵을 지켜왔었다.

그런데도 국민은 그렇데 느끼고 있는 것이다.

2000년 김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중동특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북한특수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특수는 오지 않았다.

이러한 말들이 쌓인 탓일 게다.

사실 국민의 눈에 비친 대북 2억달러 비밀 송금은 작은 일이 아니다.

지난해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가 국회증언에서 현대상선에 대한 4천억원 변칙대출과 관련 "북한이 새로운 무기와 화력으로 무장하고 우리 함정을 공격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고백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다.

또 전 국정원 직원이었다는 서울대 법대출신은 2조원 지원설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지 않은가. 이런 설(說)들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밝히기 위해서도 조사는 필요한 것이다.

국민적 여론은 진상조사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일까. 여야 모두 진상은 규명되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측의 유인태 정무수석이 "김대중 대통령의 해명은 내가 야당이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당선자가 최종적으로 제시한 국회에서의 진상규명 제안은 일단 일리는 있다고 보겠다.

DJ측과의 타협인지 아니면 작전상 한시적 후퇴인지는 몰라도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일리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의 검찰로서는 대통령을 조사하기가 어려울 테니 국회를 통해 특검제나 국정조사로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러나 거꾸로 국회에서 어기적거리다 유야무야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노무현도 소신이나 바꾸는 걸 보니 별 수 없구나" 하는 소리를 들을 테니까.

서상호(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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