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정원 환전과정 개입 가능성

현대상선이 2천235억원을 북한에 송금하면서 회사의 공식 재정·회계 담당자를 배제한 '비선라인'을 활용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현대측의 대북송금 목적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송금시기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간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6월12일에 이뤄졌으며, 대북송금은 정상회담 대가용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출 경위=북한에 송금된 2천235억원을 포함, 4천억원을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 대출받은 것은 2000년 6월7일.

당시 4천억원은 당좌대월 수표 8매 형태로 현대측에 대출됐고 이중 2매(1천억원상당)는 현대건설 기업어음(CP) 매입용으로 조달됐다.

나머지 6매는 6월8일 현대측의 요청에 따라 액수가 적은 63매의 수표로 쪼개져 현대상선에 전달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고액수표를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의 수표로 분할하는 것은 현대상선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중 37매(760억원 상당)는 현대상선 CP 매입자금으로 충당됐고 나머지 26매(2천235억원 상당)가 달러화, 계좌이체 등 현금화 과정을 거쳐 북한으로 송금됐다.

◇송금과정과 경로=송금된 2천235억원은 최초단계에서부터 '제3의 계좌'를 통해 세탁과정을 거쳤을 것이란 주장과는 달리 현대상선의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산재한 현대상선 보유 10여개 계좌를 통해 최초로 입출금됐다.

문제는 2천235억원 상당의 수표에 적힌 이서내용이 신원불상자 6명 명의로 돼있는데다 최초 입출금 계좌 이후의 흐름에 대해선 감사원이 계좌추적권이 없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서문제에 대해 감사원측은 "현대상선이 외환은행 등 금융기관에 신원불명자가 이서된 수표를 제시했더라도 당장 출금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어서 금융손실 위험부담이 없고, 해당수표가 은행 입금 당일 또는 직후 산업은행에 회수(추심절차)돼 가짜수표 여부까지 확인되기 때문에 이서내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감사원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현대측이 대북지원금을 은밀하게 별도로 표시, 분류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제의 수표에 가공의 인물을 이서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최초 입출금 과정에 국정원 등 제3자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추정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김 대통령 방북 하루전인 2000년 6월12일 국정원이 4차례에 걸쳐 외환은행 본점 영업부를 통해 홍콩의 '중국은행', 마카오의 북한회사 계좌를 거쳐 송금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 6월 감사과정에서 현대상선 재정담당자 2명을 불러 조사를 벌인결과 "2천235억원에 대해선 회사측 윗선으로부터 관여하지 말고 위로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에 비춰 대북송금 과정은 공식 회계라인이 아닌 비선라인을 통해 이뤄졌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합법성 여부를 떠나 대개의 대북송금의 경우 홍콩과 마카오 등을 거쳐 북한에 전해진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국내외의 모든 대북관련 행위에 대한 정보와 동향을 취합하는 것을 고유업무로 하고 있는 국정원으로선 이번 송금과정을 최소한 제3자적 입장에서 알고 있었거나 현대상선 수표의 환전과정 '편의'를 봐줬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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