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파주로 간 LG필립스

LG필립스가 경기도 파주에 무려 100억 달러(약 12조원)를 투입해 대규모 차세대 LCD(박막액정표시장치) 생산공장을 짓기로 하자 구미 시민들이 크게 허탈해 하고 있다.

이미 구미에 LG필립스의 LCD 생산공장이 있는 데다 구미공단 4단지가 첨단업종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구미 시민들이 느낀 충격의 심각성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충격'과 '실망'의 파장은 비단 구미 시민들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최첨단 대기업이 들어서면 그 주위에는 수많은 첨단 벤처기업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모이게 된다.

요즘 회자되는 산업집적지(클러스트)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만일 구미에 LG필립스의 새로운 공장이 들어선다면, 그 영향으로 '구미-대구'의 희미한 IT(정보기술)라인은 세계 최고의 첨단산업 집적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구와 구미는 30~40분 거리에 불과한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한 도시'나 다름없다.

따라서 대규모 생산공장은 구미에 있더라도 이를 지원하는 첨단 벤처는 교육, 문화, 사회적 환경이 더 나은 대구권에 위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R&D(연구개발) 기능의 강화로 지역대학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기회를 갖는다.

LG필립스가 구미가 아닌 파주를 선택한 것은 대구에도 엄청난 기회의 손실인 셈이다.

기업의 투자는 이윤추구라는 기업논리에 따른다.

파주가 우리나라의 모든 핵심자원이 다 모인 수도권 인근 지역이란 사실을 제외한다면 구미가 파주보다 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차피 '지방'은 '수도권'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만큼 경쟁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전략만 잘 세웠다면 LG필립스의 새 공장을 파주에 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 솔직한 안타까움이다.

우리는 세계 최대의 전자산업단지인 구미공단과 반도체.디스플레이 특성화 대학인 경북대를 가지고 있다.

구미공단과 구미~대구 라인에 충분한 공장용지도 있고, '지방시대'를 국정지표로 내세운 정부까지 있다.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서로 분열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제대로 된 도전장조차 내놓지 못했다.

언제 대구시-경북도-구미시-경북대 등 책임있는 지역 주체들이 '경제공동체'이자 '운명공동체'로서 생존전략을 진지하게 논의해본 적이나 있는가. 구미공단 4단지를 첨단단지로 만들겠다며 고군분투(?)하던 구미시가 "LG필립스의 그런 계획을 전혀 몰랐다"고 변명하는 것은 듣기조차 애처롭다.

우리 스스로도 힘을 모으지 못하는데 해외 투자자들이 대구.경북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면 어불성설이 아닐까.

"잠에서 깨어나 대구.경북이 하나임을 느껴라"는 지역민들의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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