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차라리 산으로 가실거지

이회창씨가 미국 스탠퍼드 인가 뭔가 하는 대학에 '공부하러' 간다며 훌쩍 떠나버렸다.

이어서 정몽준 의원도 같은 미국대학에 '연구'하러 간다며 출국했다.

두사람 다 다른건 몰라도 공부라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할만큼 한 지식인 축에 끼인다.

이씨는 경기고서울대출신에 대법관총리까지 지냈으니 공부가 모자라서 그 나이에 유학가야할 만큼 지식부족이 장기출국 사유는 아닐테다.

정씨 역시 미국 명문대학에서 학위받고 온 재벌가 출신의 국회의원에다 대선후보에까지 올랐던 사람이니까 '가방끈이 짧아서 문제있는 사람'은 분명 아니다.

따라서 객원연구원으로 외국대학에 장기간 연구하러 가겠다거나 '한반도 문제 등 조국을 위한 마지막 봉사의 일을 모색하러' 남의 나라 대학에 나가있겠다는 두사람의 유학이유는 왠지 보통사람들의 가슴에는 쉽게 수긍되거나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공부는 핑계고 두사람 다 대선에서 패배한 패장이라는 공통점을 놓고볼때 정신적인 피난처를 찾아가는 현실도피성 유학이 아니겠느냐는 인상을 더 진하게 느끼게 된다.

배움에 나이가 문제될것 없고 학문의 길은 끝이 없다는 말은 보통국민들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지난날 우리는 정치인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국내에서 좌절당하고 밀리고 별볼일 없이 돼버리면 무슨 교환교수니 객원연구원 같은 그럴듯한 명분을 붙여 외국으로 달아나다시피 내나라를 떠나는 걸 유행병처럼 봐왔기에 이번 두 대선 패배자들의 돌연한 외국유학 출국도 그렇고 그런 정치망명처럼 비쳐지는 것이다.

92년의 김대중씨가 YS에게 쓴잔을 마신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건너가 세월 보내면서 정치적인 재기 틈을 기다렸던 것도 대다수 국민들 기억에는 공부보다는 정치적 피난으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정치인이 일시적으로 몸을 피해 외국으로 나가는 일은 외국에도 흔했다.

중국의 손문도 영국으로 몸을 피해 삼민주의를 체계화시켰고 아인슈타인이나 칼 마르크스도 인생 후반부의 대부분을 미국이나 런던에서 보내며 학문이나 사상적인 면에서의 자아변신과 기여를 했었다.

이번에 '유학'을 떠난 두사람의 경우 과연 1, 2년 뒤 미국 유학생활에서 얼마만큼 자신의 말대로 '조국을 위한 봉사의 일'을 모색해낼지 모르지만 경험적인 추측으로는 가슴앓이만 아물고 정치판에 뭔가 다시 끼어들 틈이 보일때 쯤이면 훌쩍 되돌아 올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구체적으로 그분들의 연구과제나 연구목적이 뭔지는 알 수없다.

평범한 안목으로 볼때 두사람이 외국엘 가든 국내에 틀어박혀있든 더 배우고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씨에겐 '포용과 덕치(德治)의 도(道)', 정씨에겐 크게 멀리 내다보며 때를 기다릴줄 아는 '인(忍)의 도(道)'가 아닐까 싶다.

두사람의 대선패배는 꼭히 미국대학까지 가서 배워야 할 학문적 지식이나 연구가 모자라서 빚어진 패배가 아니다.

유학의 목적이 마음 달래기 든 인격 수양이든 아니면 언젠가 다시 정치적으로나 지도층으로 재기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벌기라면 차라리 미국대학보다는 도(道)를 보완할 수 있는 산으로 가는게 더 낫다.

적어도 두사람 경우엔 산에서 장자(莊子) 노자(老子)나 아니면 퇴계학이나 성리학 같은데서 인(忍)의 도(道)와 덕(德)의 치세(治世)를 더 돈독히 깨치고 배우는 것이 더 완성된 인격과 리더십 능력을 키우는 길이 될것이다.

대권경쟁자의 대통령 취임식에 나가 박수라도 한번 쳐주고 떠나가도 될법한데 사촌 논 사는 꼴 보기 싫다는 것도 아니면서 휑하니 떠나가는 모습에서 또한번 덕(德)을 생각케 된다.

차라리 패배후 홀로 1t트럭이라도 타고 전국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선거에 져서 죄송하다는 인사라도 다녔다면 학벌 너무 좋아 귀족냄새 난다고 비토했던 국민들에게 그나마 인간적인 호의쯤은 건졌을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차라리 깊은 산(山) 이름없는 암자에라도 들어가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이라도 읽고 있겠노라며 훌쩍 떠났다면 얼마나 커보이고 미더워 보였을까.

그리고 어느날 다시 훌쩍 산(山)을 내려와 라이벌이었던 노 정권에게 선문선답 같은 훈수라도 던지며 견제해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나마 정치인들을 그리고 정치판을 조금은 곱게 봐 줄 수 있지 않을까. 이곳저곳서 전쟁을 치르겠다며 로보캅 같은 쇳소리 내고 있는 미국보다는 차라리 한국의 산으로 수도(修道)와 참선(參禪)의 길을 떠났더라면 기다려지고 보고 싶기나 했으려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점심 굶는 학생들이 수두룩한 힘든 세상에 맘만 먹으면 시시때때 유학갈 수 있는 정치인들의 '포시러운' 망명유학 바람은 언제쯤 개혁될까. 그들이 대선에서 떨어진 이유의 한귀퉁이가 보이는 미국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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