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상위권 수험생 '실리'재수 급증

대학 입학 정원이 수험생 수보다 많아 들어갈 자리가 남는데도 인기 학과, 취업 유망 학과 진학을 노리고 일찌감치 재수를 선택하는 수험생이 급격히 늘었다. 특히 이들 대부분의 성적이 중.상위권이어서 재수생이 2004학년도 입시에 미칠 영향도 예년 못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수 열기 어느 정도인가=서울의 한 재수생 종합 학원은 지난달 초 교육부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대학 합격자 발표는 커녕 전형도 끝나지 않았는데 종합반 학생 모집을 했기 때문. 학원 관계자는 "모집에 나선 게 아니라 밀려오는 학생을 받았을 뿐"이라며 "상당수는 330점대 이상의 상위권 학생들로 의대나 한의대 등에 진학하기 어려운 성적을 거두자 곧바로 재수를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 대성학원의 경우 최근 강남, 송파, 노량진 등 3개 학원에서 선발시험을 통해 6천300여명의 재수생을 등록받았다. 선발시험에서 떨어진 인원만 6천명이 넘는다고 학원측은 밝혔다. 서울 강남에서 최상위권 재수생들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한 학원에는 선발시험 경쟁률이 무려 14대1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에서도 대구 일신학원이 이미 마감된 앞산 분원을 포함해 2천명 이상 등록했으며 부산학원 역시 2천명을 넘어서 예년보다 한층 빠른 등록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일신학원 관계자는 "등록생 대부분이 수능 300점 이상"이라고 했다.

▲왜 이런가=과거 재수는 이른바 명문 대학, 조금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보통. 그러나 대학 수와 정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 자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 심화되고, IMF이후에는 이른바 명문대 졸업자들도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전문 직종이 각광받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의예, 한의예, 약대 등의 경쟁률과 합격선이 가파르게 높아진 것도 이 때문. 특히 수의예과는 애완동물 키우기 붐을 타고 최근 2, 3년 사이 합격선이 수직에 가깝게 상승했다.

서울대, 경북대 등 국립대는 물론 연.고대 등 상위권 대학에 입학했다가 한 학기를 마치고 이른바 '반수'를 택하는 학생이 늘어난 것도 대학 간판보다 실리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취업 재수보다는 대학 재수가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갈수록 낮아지는 고교생 학력, 쉬운 수능시험, 내신이나 학교생활에 구애받지 않는 집중적인 공부 등 재수생에게 유리한 상황도 쉽게 재수나 반수를 선택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

▲대책의 초점은=그동안 대입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학을 서열화하고 수험생을 여기에 줄서게 한다는 사실이 지목됐다. 때문에 제도 개선의 초점 역시 서열화를 해소하는 데 맞춰졌다. 하지만 최근 의.약계열 부상과 이.공계 몰락의 예에서 보듯 문제의 중심은 학력지상주의가 아니라 졸업 후 직종과 그에 따른 학과지상주의로 바뀌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대학 서열 타파와 함께 이른바 전문 직종이 아닌 대학.학과들에 대한 지원 강화, 취업 기회 보장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울러 초.중.고의 직업.진로지도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컸다. 김규원 경북대 입시자문교수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직업 전망을 너무 단기적으로 보고 학과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초.중.고 단계에서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를 넓고 장기적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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