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19 전화응답 위기대처 도움 못줘

"네... 갔습니다", "출동했습니다", "기다리세요".

독가스가 스며들고 불길이 치솟는 참사 현장에서 객차에 갇혔던 승객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119 구조대로 전화를 걸었으나 돌아온 답변은 너무도 간단했다. 간단한 대피요령은 커녕 "침착하라"는 도움말조차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우왕좌왕하며 암흑 속을 헤매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119 구조대의 최초 전화 대응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가 시민들 사이에 커지고 있다. 목숨 걸고 구하려 뛰어든 구조대원들의 공로는 높지만 미흡한 초기 대응 탓에 희생이 커진 점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것.

시민 김태수(53.달성 옥포면)씨는 "몇십초 차이에 승객 수십명의 생사가 엇갈린 상황에서 했다는 119 구조대의 전화 응대를 보고 분통이 터졌다"며 "사태 파악이 비록 힘들더라도 출동했다는 말만 되풀이 할 게 아니라 선로나 벽을 따라 대피토록 안내라도 했더라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와 했다.

분노한 네티즌들의 글도 대구시 소방본부 홈페이지 등에 잇따라 오르고 있다. 네티즌 김진희씨는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119는 자동응답기에 불과했다"며, "유독가스를 피하는 방법이나 수동으로 문을 여는 법만 알려줬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ID가 '예비소방관'인 한 네티즌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환자를 안심시키고 응급조치를 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창문을 깨고 선로를 따라 대피토록 지시했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을텐데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적었다. '서울깡다구'라는 네티즌은 "자신의 아내나 딸이 절박한 심정으로 전화를 했더라도 '네, 갔습니다'만 되풀이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때문에 시민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미국의 911시스템과 같은 보다 향상된 재난 대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911 시스템은 신고 응답자가 가급적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짧고 간단한 질문을 계속하면서 상황을 신속히 판단하고 신고자를 안심시켜 위기 상황에서 빠져나오도록 돕기 위한 것.

'911 신고' 관련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왜 응답자들이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하느냐?'는 시민들의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위급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 필요한 인력 및 장비를 출동시키고 △출동하는 경찰관이나 소방대가 현장 도착 전에 상황을 보다 정확히 알도록 도우며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신고자가 생존할 수 있도록 대피 안내 등 응급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라는 것.

최근 미국에선 'E911'(Enhanced911, 강화된 911) 시스템이 확산되고 있다. 유선은 물론 휴대폰으로 응급전화를 걸어도 신고자 위치가 자동적으로 파악되게 함으로써 신고자가 전화를 거는 것과 동시에 구조대가 출동할 수 있도록 한 것. 출동대기 시간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신고자가 최대한 빨리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도우려는 시스템이다.

경북도 소방본부 한 관계자는 "국내의 경우 특히 화재사건 때는 신고전화가 폭주하기 때문에 사고 개요를 물은 뒤 계단을 통해 옥상이나 밖으로 대피하라는 간단한 지시를 하는 것 외에는 장시간 통화를 할 수 없다"며, "이번 재난 때도 신고전화 회선이 충분하지 않았고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 화재이다 보니 초기 대응이 미흡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비상코크만 열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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