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여인의 숲 기념비'제막-"거목같은 덕 기립니다"

'여기 한 여인이/ 숲 사랑의 씨를 뿌려/ 전설같은 향토사랑의/ 미담으로 피어나게 하였더라/ 이 숲 있으매/ 뭇 생명들 수마에서 건져내고/… (중·하략)'

현충일인 6일 포항시 북구 송라면 하송리에서 제막식을 가진 '여인의 숲'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다.

'여인의 숲'이 있는 하송리는 포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영덕쪽으로 가다 중간쯤으로 국도변에서 1km남짓 내륙쪽에 위치해 있다.

이 숲은 지금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 아름드리 노거수 수백여 그루가 울창한 아름다운 동산으로,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쉼터이다.

이날 제막식은 노거수(老巨樹) 보존에 앞장서고 있는 노거수회(회장 이삼우)가 마련한 것으로, 회원을 비롯해 포항시장, 지역 국회의원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기념비의 주인공인 여인이란 이곳에서 살다 60세를 일기로 1900년에 사망한 김설보(金薛甫)여사를 말한다.

김여사는 조선말 역촌이었던 이 곳에서 주막을 하면서 모은 재산의 일부로 이 일대 울창한 숲을 매입, 마을에 기증했다.

김여사의 남편 윤기석공은 당시 무과에 급제, 무사과(지금의 육군소위에 해당) 벼슬을 지냈다.

이 동네에 사는 김도겸(73)씨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기증 면적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시유지 면적이 6천여평이니 8천~9천평 정도는 족히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노거수회 이삼우회장은 "일제 강점기 전 이 일대는 수백년씩 되는 느티나무가 울창했으나 일제가 전쟁을 위한 군수용으로 모두 베어간 후 상수리나무로 바뀌었다"고 했다.

당시 이 마을에는 홍수가 심해 사람과 가축이 바다쪽으로 떠내려가다 이 숲에 걸려 대부분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김여사가 생존해 있을 때인 1897년에 이 숲 한쪽에 송덕비를 세웠다.

지금도 기념비 옆에 당시의 조그마한 송덕비가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여사의 현손인 윤대구(69)·대호(60)·대문(57)씨도 참석했다.

후손들은 하나같이 "이 숲이 앞으로 잘 보존돼 할머니의 정신이 길이길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여사는 이 숲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남편 윤공의 묘소 옆에 잠들어 있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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