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대구비전 2020 희망보다 걱정 앞서

오랜 기간 정치적으로 방황하고 경제적으로 침체돼 있던 대구는 최근 지하철 참사로 사회적 공황마저 덮쳐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대구가 새 희망을 찾아 새로이 발전할 수 있는 비전은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비전2020'이란 부제가 붙은 대구시의 장기발전계획이 발표되었다.

이 계획에는 그동안 대구발전과 관련하여 관과 민에서 논의됐던 다양한 의제들이 거의 망라돼있다.

방대하지만 공허

이 계획에는 대구의 비전을 '세계로 향해 열린 문화녹색도시'로 설정하고 있다.

이 계획에 의하면 2020년의 대구는 풍요롭고 안전하며 쾌적하고 개성 있는 도시가 된다.

복지, 안전, 문화, 환경, 정보 등이 대구라는 도시의 미래상을 말해주는 키워드이다.

이러한 비전과 미래상을 실현해 줄 10대 프로젝트로서 테크노폴리스 조성, 대구 소프트타운 조성, 한방 바이오밸리 조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공간구상, 산업, 교통물류 등 8개 부문별 계획과 구.군별 계획이 담겨있다.

대구로서는 전례없는 방대한 계획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광범위한 내용을 담은 이 계획을 보면서 다소 공허하고 때로는 판에 박인 듯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마도 이는 그 발전계획이 요즈음 많이 얘기되는 좋은 비전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 대구에 독특한 실현가능한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떤 곳에는 '동북아 비즈니스 경제중심도시'라고 하다가 다른 곳에는 '문화녹색도시' 혹은 '자원순환형 환경도시'라고 하고 있다.

경제중심도시를 지향하는지, 문화도시를 지향하는지, 녹색도시를 지향하는지 분명치 않다.

이렇게 비전 설정에서부터 분명하지 않고 뒤섞여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정책들도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제시되고 있지 못하고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고 말았다.

'첨단지식산업과 비즈니스 서비스 산업의 집적도시'로 전략산업의 비전을 설정한 것은 백번 옳지만 IT, BT, NT를 모두 육성하겠다는 구상은 무모하다.

대구의 부존자원과 비교우위를 분석하여 IT면 IT, BT면 BT로 해야지 이것저것 다 하겠다면 하나도 제대로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제시된 10대 프로젝트를 보면, 먼저 달성군 일원 570만평에 테크노폴리스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위천공단 건설 좌절의 악몽을 떠 올리게 한다.

인근 자치단체의 동의 없이 불가능한 이 테크노폴리스 조성에 대구의 장래를 걸어서야 되겠는가.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도 좋고 소프트타운도 좋지만 그 실현을 위한 주도면밀한 실행계획이 없으면 공염불에 끝날 우려가 없지 않다.

이것저것 백화점식

대구장기발전계획에는 현재 대구의 부존자원과 성장잠재력, 제약조건에 대한 분석 평가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디지털-네트워크 경제에서 경제주체들간의 신뢰와 협력이라는 사회자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 계획에는 사회자본 형성을 위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여성의 경제, 사회, 정치 참여 증대를 통한 새로운 발전 잠재력의 형성 정책을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발전계획에 핵심적인 인적자원개발계획이 결여되어 있는 점은 치명적 약점이라 하겠다.

대구장기발전계획은 하드웨어적 물적 사회간접자본 중심의 대형프로젝트 위주로 짜여져 있다.

다가올 지방분권 시대에 지역주민의 자치역량과 혁신역량을 강화하여 내생적 발전을 지향하기 위한 교육문화 사업과 같은 소프트웨어적 대형 프로젝트가 없다.

아울러 발전계획이 결국 관 주도로 추진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구의 장래가 달린 장기발전계획의 실행과 평가에 기업, 대학, NGO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프로그램이 없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점들 때문에 이 계획은 대폭 수정보완한 뒤 실행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대구의 밝은 미래를 위한 좋은 계획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산고를 치를 값어치가 충분히 있다 할 것이다.

김형기(경북대교수, 대구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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