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민 옥죄는 빚, 빚, 빚-생계형 자살 급증

"차마 당신과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될 상식밖의 일인 줄 알면서도 하루하루 살아 가는 시간들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소…".

지난달 26일 대구 구암동 산자락에서 김모(37)씨가 목을 매 숨졌다.

위의 유서는 김씨가 승용차 안에 아내에게 남긴 것. 2년 전 개인사업을 시작했던 김씨는 뜻과 달리 2천여만원의 빚까지 지게 되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지난 4월27일 오전에는 대구 상인동 한 아파트에서 주민 조모(39)씨가 땅바닥으로 뛰어내려 숨졌다.

일용직 근로자였던 조씨는 최근 인력 시장에서 일자리를 못 구해 술에 취하면 자주 "죽어버리겠다"고 처지를 비관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조씨는 숨진 날 새벽에도 인력시장으로 일자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허탕 치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 왔다고 했다.

빚에 쪼들리거나 일자리를 못 구해 세상을 저버리는 '생계형 자살'이 최근 또다시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망자 숫자는 IMF사태 직후 수준까지 치솟았으며, 그 때문에 그 당시 빈번했던 생계형 자살 파동이 재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대구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대구에서 발생한 자살자는 2000년 491명, 2001년 487명으로 재작년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작년에는 546명으로 한해 사이 12%나 급증해 IMF사태 직후이던 1998년 593명에 육박했다.

특히 여성 자살자는 2000년 148건, 2001년 135건, 2002년 140건으로 변동폭이 거의 없었던 반면, 생계 관련 개연성이 높은 성인 남성의 자살률은 2000년 69.9%(전체 자살자 491명 중 343명)에서 2001년 72.3%(342명), 2002년 74.4%(406명)로 매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영남대 사회학과 김한곤 교수는 "최근 실업.채무 등에 몰려 세상으로부터의 도피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느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고, 같은 학과 박승위 교수는 "생활 여건이 점점 나빠지면서 체납이나 카드빚 등으로 인해 압류 당하는 경우가 느는 만큼 물질적.정신적 좌절로 삶의 의욕을 잃기 쉬운 서민 압류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 생명의 전화 김주성 소장은 "자살을 한 개인의 문제로 방관하는 사회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가가 앞장서 자살을 예방하고 유가족을 보호.지원하는 법률을 만드는 등의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