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심의 섬 대구 용산동 거너실 마을 "아직 하수도도 없어요"

농경시대 오랜 세월 일대의 '중심지'였던 마을이 이제는 거대 빌딩 속의 섬으로 갇혀 버렸다.

초고층 아파트들에는 현대식 부엌.욕실.화장실이 기본이 돼 버렸지만 그 땅에 농사 짓던 사람들의 마을에는 하수도 시설조차 없어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집은 하나도 없고 상당수는 여전히 연탄을 때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도심 속의 섬에 떠 있는 거지 뭐".

대구 용산1동 거너실 마을은 동네사람들 말 그대로 섬이었다.

공간적으로도 그랬지만 시간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타임머신을 타고 갑자기 옛날 공간으로 들어선 듯했다.

길 건너에는 달구벌 스포츠센터, 장애인 종합복지관, 학생문화회관, 대형 할인매장 등 첨단 건물들이 늘어섰고 분양가 높기로 유명한 한 아파트 신축공사 역시 한창이었지만, 이 마을만은 아직 1970년대였다.

*재래식 화장실에 연탄 때

소형차 한 대가 들어가기 힘들어 보이는 비좁은 길을 덮고 있는 것은 울퉁불퉁한 시멘트. 낡은 슬레이트나 기와 지붕을 인 벽돌 단층집들은 언제 허물어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해 보였다.

마을의 강길중(62) 통장은 오랜 세월 50사단 군부대와 인접해 고도제한을 받아 단층집만 허가되다 보니 생긴 결과라고 했다.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 본 한 집에서는 할머니 5명이 시골 같이 평상에 둘러앉아 멸치 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고령에서 시집 와 이곳에 산 지 40여년째야. 단칸방에 쥐들이 어찌나 많은지 하룻새 7마리나 잡기도 했지". 자녀들 출가시키고 혼자 산다는 박위출(72) 할머니는 "모처럼 젊은 사람을 만났다"고 반가워하며 취재기자의 손을 덥석 잡기도 했다.

"택지개발로 몇년새 거대한 도시가 형성되면서 안온하던 마을이 황폐해진 것 같아". 동네 친구격인 진두금(72) 이순선(71) 이명순(71) 우분석(70) 할머니는 개발되기 전 '신작로'를 걸어 시장 보던 일을 얘기했다.

*한창땐 300여가구 달해

모두들 그리워한 것은 300여 가구 1천여명이나 모여 살던 옛날의 그 활기롭던 시절. 지금은 140여 가구 450명밖에 남지 않아 마을이 휑하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살아왔다는 박노성(76) 할아버지는 "마을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대신 외지 근로자들이 들어와 산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외지 근로자들에게 방을 세놔 5만~15만원씩의 월세를 받아 생활한다는 것. 할아버지는 "이 마을도 언젠가 개발되고 옛 고향 모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세상 변화를 씁쓸해 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마을은 일대의 중심지였다.

인근 장기.성서택지는 야산이거나 논밭이었고 용산택지도 와룡산 자락의 계단식 논밭과 연못이었을 뿐. 이 마을이 유일한 대형 촌락이었다.

*도시개발계획 대상 안돼

그러나 그런 장점은 1994년 5월 시작된 용산택지 개발 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 마을이 주택지역으로 분류됨으로써 개발 대상에서 빠졌다고 했다.

당시 주택공사가 마을 터에 임대아파트 건립 계획을 제시했으나 보상문제로 무산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앞날도 그리 밝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용산택지 개발 이후 이곳도 개발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기다려 왔다"고 했으나, 달서구청 손경수 도시계획 팀장은 "거너실 마을에 대해 잡혀 있는 도시계획은 없다"며 "주민 자체 개발 이외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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