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모래 위에 지은 새 집

노무현 대통령은 각 부처마다 개혁 주체세력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새집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 보다 먼저 나라의 기본을 세우고 원칙을 다지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 정부와 사회는 지금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가 사회의 기본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를 방증하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국가의 정체성부터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싸우다 죽은 영령들을 추모하는 현충일에, 아직도 적성 국가의 통치자의 답방(答訪)을 소망하는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그 뒤를 이은 대통령은 현충일 기념사만 하고서 부랴부랴 한 때 그 영령들의 철천지 원수로 여겼던 나라로 날아가서 그 국왕의 만찬에 참석했다.

또 한국의 정당은 얼마나 취약한가. 대통령을 만들어낸 집권당은 여당으로서 의무를 포기한 채 이제 당을 해체해서 새로운 당을 만들려는 세력과 그 당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세력간의 갈등이 닭과 지네처럼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국정에 미숙한 통치세력을 전심으로 도와도 부족할 처지에 밥그릇 싸움으로 세월을 허송하고 있다.

야당도 정책 중심으로 모이지 않았고, 사람을 좇아서, 또는 이해 득실을 좇아서 모인 탓인지 지극히 기반이 취약하다.

이것이 한국의 정당들의 모습이고, 이들이 이 나라 정치를 담당하고 있다.

사법부는 어떠한가? 수사 중이거나 재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 통치자나 정당과 언론이 공공연하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오늘의 사법부 위상이다.

경제는 어떠한가? 수십 조 원의 돈이 지하에 잠자면서 그 흐름을 왜곡시키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이 무너지고, 정경유착은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것이 한국 기업이다.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웃돌고, 자녀교육 때문에 이민가야하고, 그 본질을 외면한 지엽적인 문제로 학교가 흔들리는 교육 부재의 나라가 한국이다.

돈이 된다고 하면 식품에 유해물질을 섞어 파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돈 때문에 어린이와 부녀자를 납치하고, 부모를 죽이고, 위장 살인도 할 수 있고, 유흥비나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 짓을 하는 젊은이, 돈 때문에 몸을 파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10대 소녀들, 시간과 정력과 돈을 들여 얻은 지식과 기술이 나이 때문에 일터에서 밀려나고, 학문의 열정으로 공부하여 왔던 대학 강사가 비전 없는 자기 지식에 환멸을 갖고 목매어 죽고, 이러한 사건이 매일매일 엄청나게 나타나는 것이 이 나라이다.

궁궐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거환경이 50년 전이나 다름이 없는 사람도 있다.

노동집단의 시위에 산업현장이 마비가 된다.

이렇게 지반이 허약한 것이 한국사회이다.

이러한 형편에 다시 새집을 짓겠다고 한다.

집터가 바로 모래인데 그 위에 집을 지은들 그 집이 몇 년을 지탱하겠는가? 모래 위에 지어놓은 집을 그대로 두고 그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어 놓는 일이 시급하다.

그것은 새 집을 짓는 일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설사 그 모래 위에 새 집을 짓는다 해도 그 집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그 기간밖에 더 지탱될 수 없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우리나라는 건국 후 반세기 넘는 동안에 어느 대통령도 국가 사회 기반을 다질 수 없는 상황에서 임기를 보내었다.

내우외환이 겹치는 가운데 생각도 짧아서 새 집만을 지으려 했다.

그래서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명분을 강화함으로써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그래서 건국 이래 모든 통치자들은 모래 위에 집 짓는 일을 계속했고, 그렇게 지은 집은 그 다음 통치자에 의해서 다시 부셔졌다.

그럴수록 집의 터전은 점점 취약해졌다.

지금 참여정부가 내세우는 개혁이 바로 그 집터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없다.

과거 것을 모두 헐겠다는 발상은 신선한 것 같지만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그것은 건국 이래 모든 통치자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임기가 끝나는 대로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았고, 그래서 불행했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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