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인 하프 위크 (9 1/2 Weeks)'

'나인 하프 위크'(1986)는 에로틱 영화의 선두주자다.

특히 가학과 피학의 위험한(?) 변태성을 감각적인 화면과 음악으로 처리한 여성감독 에드리안 라인의 연출력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저질스런 B급영화에 머물 스토리가 그녀의 손에 의해 훌륭한 장미다발이 됐다.

이 영화의 각본은 후에 할리우드 에로틱영화의 '돌격대장'이 된 잘만 킹과 그의 아내 패트리샤가 썼다. 잘만 킹'은 '투 문 정션'을 비롯해 '레드 슈 다이어리'를 연작으로 만들면서 여성들의 성적환상을 부채질한 인물이다.

'나인 하프 위크'의 원작은 엘리자베스 맥나일이 1978년에 쓴 동명의 소설. 실제 사건을 근거로 했다고 한다.

당시 잘만 킹은 이 영화의 감독을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제작비를 조달할 수가 없었다. 변태성욕을 그린 이 영화에 메이저 영화사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플래시 댄스'로 각광을 받던 에드리안 라인 감독을 끌어 들였다.

이혼한 독신녀 엘리자베스(킴 베이싱어)는 화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근사하게 생긴 증권 거래업자 존(미키 루크)을 만난다. 여느 여인들처럼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그러나 둘은 곧 섹스의 폭풍에 휩싸인다. 시계탑에서 선 채로 섹스를 하기도 하고, 동네 깡패들에 쫓기다 물이 떨어지는 지하도 벽에 몸을 기댄 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엘리자베스는 슬라이드를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고, 존을 즐겁게 하기 위해 뜨거운 스트립쇼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룻바닥을 기면서 존의 채찍을 받고, 바닥에 떨어진 돈을 매춘부처럼 줍는다. 결국 그녀는 존의 갖가지 요구에 완전히 지쳐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영화 초반에 얼음과 체리 등 갖가지 음식물을 이용한 성적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세련된 영상에 음악까지 돋보인 깔끔한 작품이지만 영화의 내면은 상당한 성적 폭력을 내포한 작품이다. 둘의 관계는 철저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이다.

사랑없이 시작된 육체의 향연일 뿐이다.

엘리자베스가 몸을 훑어보는 존은 허상이며, 그의 사랑한다는 말도 현실에서 구현될 수 없는 허망된 것이다. 둘의 만남은 명령과 복종의 상관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눈물을 흘린다. 후회보다 안타까움의 눈물이다.

'나인 하프 위크'는 제작단계에서부터 성인용인 X등급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라인 감독은 위험한 장면 2분 30여초를 잘라내고 겨우 R등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대단히 에로틱하고 도발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주연배우의 호연 덕분이다.

미키 루크는 결벽증에 걸린 증권 애널리스트의 모습을, 킴 베이싱어는 일상에서 벗어나 성적 모험을 즐기는 독신녀를 잘 연기했다. 특히 둘은 성적 환상을 즐기기 위해 갖가지 위험한 포즈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이 떨어지는 지하도 계단에서 섹스는 마치 한 몸이 된 듯 격정적이다.

평소 미키 루크는 거짓 정사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엔젤 하트'와 '와일드 오키드'의 정사 장면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나인 하프 위크'에서는 그의 뜻이 이뤄질 수 없었다.

촬영장에서 둘은 마치 개와 고양이처럼 상극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킴 베이싱어는 미키 루크와 키스하는 것이 재떨이에 키스하는 것 같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감독 또한 영화의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둘의 적대감을 부추겼다.

영화 밖의 친밀감이 영화 속 연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항간의 속설이 '나인 하프 위크'에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킴 베이싱어와 미키 루크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출연한 '야한 영화'라는 점이 주목을 끌었다.

에로킹(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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