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도계지역 그곳에선-(1)두개도 한 마을 임곡리

충북과 맞붙은 상주 화남 임곡리

실도랑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충청도로 갈라진 '임곡리'. 대대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곳이지만 행정구역은 경북도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와 충북도 보은군 마로면 임곡리로 나뉘어 있다.

비룡산과 천탁산, 삼황산과 구병산, 그리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듯한 먹산이 사방으로 둘러쳐진 이 마을은 동학 교도들의 한이 서려 있고 십승길지(十勝吉地)의 한 곳으로 알려진 역사가 오롯이 흐르고 있다.

그러기에 경상도와 충청도를 따지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삶을 일궈왔다.

매년 정월 보름이면 양 지역사람들은 동네 앞 산꼭대기에 올라 한 해의 평온과 풍년농사를 비는 산신제를 함께 지내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도 함께 지낸다.

물론 제주와 유사도 지역구별 없이 뽑고 음식도 공동으로 준비한다.

경상쪽 마을이장인 전해웅(67)씨는 이쪽저쪽에서 혼사라도 있을 경우 이 마을 최대 잔치로 받아들여 양쪽 혼주들이 서로 다른 혼인 풍습을 논의하고 세심한 신경을 썼던 기억들을 들려준다.

마을 양쪽 사람들은 "우리 동네는 예부터 친·인척들이 살았던 곳이라 행정구역이 나누어졌다고 사람의 정까지 나누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

또 문만 열면 보이는 집이나 전화는 지역번호를 별도로 사용하지만 생활권은 하나다.

때문?경북지역 김연식(74) 할머니 집에는 전화가 두대다.

한 대는 대전과 충청도 쪽으로 나가 있는 자식들, 친·인척들과 통화하기 위한 충청도 전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상도 지역 농협과 우체국 등 생활에 필요한 경상도 전화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잠은 경상도에서 자고 물은 충청도 물을 먹는다는 말이 생겼다.

지난해 상주시가 경상쪽 주민들을 위해 설치한 간이상수도가 충청쪽 지하에서 끌어올린 원수(源水)를 사용하기 때문. 임곡리 마을에는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북지역 인구가 600여명, 충북지역 인구가 200여명이나 됐고 학생수만도 200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주시 임곡리에 40여 가구에 80여명, 보은군 임곡리에 10여 가구 20여명에 불과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조금씩 반목과 경쟁이 고개를 내미는 일이 생겨났다.

한 예가 노인회관. 마을 한가운데에는 상주시가 지은 노인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수년간 이 회관은 경북이나 충북쪽 구별 없이 노인들의 쉼터였다.

하지만 올 들어 별다른 이유없이 충북쪽 노인들이 마로면 사무소로 찾아가 노인회관 신축을 건의해 경북쪽 노인회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덕배기에 충북쪽 단층 노인회관이 지어지고 있다.

또 지난해 상주시가 이 마을에 간이상수도를 놓자 이번엔 보은군에서 충청 사람들을 위해 간이상수도 공사를 해주고 있다.

경북쪽 마을 노인회장 장진복(74)씨는 "작은 마을에 노인회관이 두 개가 필요하냐"며 "충북쪽 노인회관이 준공되면 이젠 왕래조차 끊어질지 모른다"며 걱정한다.

충청쪽 주민들은 "예로부터 이곳은 보은군에 속했기 때문에 충북으로 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충북쪽 마로면 소재지보다 화남면 소재지가 더 가깝고 가구수도 더 많아 경북쪽으로 합쳐야 한다"고 반박한다.

마을 양쪽 사람들은 "양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사업을 벌일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 마을 사람들이 경상도와 충청도를 왕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희망한다.

상주·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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