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대구MBC 사옥에 60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대구MBC 동부지사(경주)의 철수를 요구하는 포항MBC 직원들. 이들은 대구MBC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며 삭발식을 실시했다. 지난 8일에는 포항 및 안동MBC 직원 100여 명이 대구MBC 동부지사의 1층 로비에서 점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강한 네트워크 협력체제로 묶인 MBC 계열사 간에 이처럼 사활을 건 충돌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구, 안동, 포항MBC 등 대구·경북의 3개 MBC 계열사들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접점을 찾기 힘든 갈등=지역MBC 계열사 간의 충돌은 지난 9월 23일 MBC본사가 '지역MBC 위성 및 케이블 재송신 구역 조정안'을 제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조정안은 지역 MBC간에 일부 중첩되던 위성 및 케이블 재전송 권역을 명확히 하기 위해 마련된 것.
조정안은 그동안 대구MBC와 안동MBC 두 채널 모두 케이블로 재전송되던 상주를 안동MBC 단독 재전송 구역에 포함했고, 대구와 포항MBC가 중첩되던 경주 지역은 포항MBC만 재전송하도록 했다.
대구MBC는 조정안이 통보되자 강력히 반발했다. 대구MBC는 즉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성명을 내 "방송법상 허가된 지상파 방송 권역을 무시한 채 케이블TV 재송신 권역을 임의로 조정한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10월11일부터 1주일간 MBC본사에 뉴스 기사의 송고 및 제작을 거부하기도 했고, 지난 10월18일에는 대구MBC가 본사의 조정안이 'MBC 방송네트워크 기본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공문을 공식 전달했다.
조정안에 긍정적이던 포항·안동MBC는 지난달 20일 대구MBC가 경주에 동부지사를 설치하고 부장급 지사장과 취재기자, 사업 담당자 등 3명을 파견하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네트워크 사수를 위한 포항 MBC 비상대책위원회는 11월24일에 이어 8일 성명을 내고 "대구MBC가 포항MBC의 취재·방송 권역인 경주시에 동부지사를 낸 것은 MBC 본사의 '경주시는 포항MBC 단독의 취재·방송권역'이라는 결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대구MBC 동부지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인 데 이어 두 차례에 걸쳐 대구MBC를 방문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현재 대구·포항·안동MBC는 공동으로 제작하던 라디오 및 TV의 '3원뉴스' 등을 비롯한 뉴스 교환이나 광역 프로그램의 공동 제작 및 공동 편성을 중단한 상태다.
◇명확한 입장차=대구·포항·안동MBC 등 3사는 프로그램 공조 복원이 시급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 MBC가 조정안 이전 상태로 재송신 권역을 조정한 후에 프로그램 공조를 회복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포항과 안동MBC는 조정안을 그대로 수용할 것과 동부지사를 우선 철수한 뒤 프로그램 공조를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동부지사 설치와 관련해 대구MBC는 경북 북부지역과 동해안 지역을 취재해 온 안동과 포항MBC가 대구MBC와의 기사교류는 물론 화면제공조차 거부해 불가피하게 취재팀을 파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선 대구MBC 동부지사장은 "KBS대구, TBC와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서 취재권역 확대는 불가피하며 동부지사의 폐쇄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항MBC는 "경주는 1980년 이후 25년 동안 포항MBC가 취재해 온 권역"이라며 "모든 문제의 발단은 포항과 안동MBC의 주요 뉴스를 대구의 시시콜콜한 기사보다도 천대하고 포항과 안동MBC의 프로그램을 대구MBC의 들러리로 취급하는 등의 행태에서 비롯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10일 스카이라이프와 지역방송협의회가 합의한 위성방송의 권역별 지상파 재송신을 둘러싼 해석도 제각각이다. 대구MBC는 이행 약정서의 '재송신 시점 일치' 조항을 들어 대구MBC가 계약하지 않으면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송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포항·안동MBC는 "전체 회원사의 90% 이상이 계약하면 이행 약정서가 효력을 발휘하므로 대구MBC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현재 위성방송의 권역별 재송신은 지역 방송사와 개별적으로 계약하도록 돼 있다.
MBC는 최근 수 차례에 걸쳐 정책기획이사가 주관하는 대구·포항·안동 3사 경영국장 회의를 열었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MBC는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해 전국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므로 대구MBC가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3사가 재송신 구역에 대해 합의안을 만들어낸다면 이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것. MBC 관계자는 "자율적인 해결을 바라지만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방안에는 기관경고나 사장경고와 같은 제제 조치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 지역 방송계 안팎의 시각이다.
◇사활을 거는 이유=이처럼 방송사들이 케이블 및 위성 재송신 권역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방송사의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방송 시장의 70% 정도가 케이블에 의해 공급되고 있는 현실에 비춰 케이블 재전송 구역은 해당 방송사의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세계문화엑스포에서 대구MBC는 '세계 성문화전'을 주최해 3억5천여만 원의 매출에 1억800만 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이는 대구MBC 사업국 연간 전체 매출액의 12%에 해당한다. 대구MBC가 재전송 구역에서 배제되면 그 만큼 수익을 잃게 되는 셈.
또 광고주가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낼 때 일정량 지정된 다른 방송국에도 같은 광고를 실어주는 일명 '끼워팔기'로 불리는 광고 옵션 계약이 앞으로 폐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도 그 이유로 꼽힌다. 방송광고가 광고주와 개별 계열사 간의 계약으로 바뀌게 되면 시청자 수와 가시청 지역의 규모 등에 광고 단가가 결정돼 방송 권역의 확장이 필수라는 것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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