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행복하십니까?

얼마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행복의 과학'이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세계 각국의 행복 전망을 내놓았다. 영국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 박사가 연구한 '국내 총생산(GDP)과 행복'의 관계를 인용했는데 이에 따르면 미국 스위스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의 행복지수가 대체적으로 높았다. 반면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나이지리아 국민의 행복지수는 부자나라 일본보다 높게 나타났다. 국민소득과 행복은 전반적으로 상관관계가 있지만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민의 행복지수가 소득수준에 비해 낮게 나타난 반면 푸에르토 리코 콜롬비아 등 가난한 남미국가 국민의 행복지수는 높다는 점이다. 미국 일리노이대 에드 디에너 교수는 "남미의 문화는 삶의 만족도를 판단할 때 잘되고 있는 부분을 먼저 생각하지만 동아시아 사람들은 자기 삶 중 가장 나쁜 것을 먼저 떠올리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최근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자살사망률을 설명하는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통계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집계해 지난 3월 발표한 우리나라의 자살사망률은 2002년 기준 18.7%로 OECD 29개국 중 4위이며, 자살사망률 증가율의 경우 무려 5.19%로 멕시코(3.94%), 아이슬란드(3.49%) 등을 앞지르고 단연 1위를 기록했다. 연간 1만932명이 자살 사망한 것으로 매일 30명, 48분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희망을 잡기보다 '절망'과 '자포자기'로 눈길을 돌려버리는 탓이다.

더구나 최근 통계청의 '청소년 통계'에서 청소년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자동차 사고'에 이어 2위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학업에 대한 압박감이 주원인이다. 한 두 자녀시대에 과보호로 자라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그 아이들의 심장은 떨어지는 성적의 고통을 더이상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21세기 초입의 우리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온갖 사회변화 속에서 더욱 큰 당혹감과 혼란에 직면해있다. 앞서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이며,이 시대 '지(知)의 거장'으로도 불리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20세기를 다른 세기와 구별지을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에 대해 1년 여간 각계 전문가와 인터뷰를 한 뒤 '변화의 극심함'으로 결론지었다.

지금 뉴 밀레니엄의 시대는 20세기보다도 훨씬 격렬할 것 같다. 살아가기에 정말 만만치 않은 시대에 들어섰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황순원 단편 소설 '링 반데룽'은 링(고리) 속을 자꾸만 헤매게 되는 일종의 방향감각 상실증 또는 환상 방황에 지쳐 쓰러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등산 중 폭설이나 짙은 안개로 시야를 분간못할 상황에서 계속 목표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주변만 빙빙 돌다 결국은 조난당하는. 지금 우리 사회가 혹 링 반데룽 상태인 것은 아닐까. 뼈빠지게 일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푸른 하늘의 새처럼 날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서 장밋빛 뺨을 잃어가는 아이들'''.

국적법 개정안 통과 이후 무려 100배 이상이나 폭증하고 있는 국적포기자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또다른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부모 손에 이끌려온 신청자 대부분이 남자 청소년들이란 점은 병역 회피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기야 온갖 눈총 받아가며 미국이나 캐나다까지 원정출산을 하여 힘들게 얻은 시민권을 포기할 사람이라면 아예 원정출산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말대로 '출발점이 다른' 그들에겐 '병역의무'란 '행복과 출세의 방해물 '에 다름아니므로.

그 부모들의 대다수가 교수, 외교관, 상사 해외주재원, 유학생 등 사회지도층이란 점은 더욱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지키듯 힘없고 가진 것 없는, 그러나 이 땅에 대한 사랑만큼은 강한 민초들이 흔들림 없이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지금은 북핵문제가 내일을 알 수 없게 하는 때. 깃털처럼 가볍게 한국 국적을 떼버린 그들은 속으로 안도할지도 모른다. "전쟁이 나더라도 우린 괜찮아. 미국이 제공하는 특별수송기로 떠날 수 있어. 우린 미국인이니까" 언젠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진정 행복하십니까?"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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