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 TV드라마가 눈길을 끌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픽션을 가미했지만 시청률이나 객석점유율이 꽤 높은 편이다. 지난주 방영분에 대한 시청률 조사에서 '불멸의 이순신'과 '제5공화국'이 각각 27.5%, 15%를 기록했다. 특히 12·12사태를 체험한 40대 이후 중년층들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역사적 사건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 드라마에 더욱 눈길을 주고 있다.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도 영화 갈수기인 5월 흥행부진의 우려를 말끔히 씻을 만큼 주목받고 있다. '킹덤 오브 헤븐 제대로 보기'를 표방한 인터넷 블로그도 잇따라 뜨고 있고, 영화 내용 중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을 날카롭게 꼬집는 글이나 인터넷 사이트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 영화나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일단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민감한 소재'에 있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감독이나 연출자가 어떻게 역사를 해석하고 그렸느냐,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결과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아지고 재미 따로, 사실 따로의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킹덤 오브 헤븐'의 경우 십자군 전쟁 당시 예루살렘을 회복한 이슬람 영웅 '살라딘'이라는 인물을 신의 있는 인물로 그렸다며 아랍권에서도 내심 반기고 있는 눈치다.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적당히(?) 각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무작정 깎아내리기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원균에 대한 평가나 '제5공화국'의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이번주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만화 박정희'도 좋은 예다. 물론 여기에는 역사에 대한 민중의 준엄한 평가라는 측면과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인물의 공과나 사실의 객관화라는 일면에서 시각적 편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문제는 자기 생각이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냐는 점이다. 인터넷에 오른 반응을 보면 "누구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라거나, "누구를 두번 죽이는 짓"이라느니 제각각이다. "드라마를 보고 스트레스 받아서 (속이 끓어서) 못살겠다"는 다분히 감정적 반응도 있고, 사우나에서 목욕하던 50대 남성 2명이 '제5공화국'을 보다 시비가 붙어 폭력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역사를 보다 엄밀한 관점에서 규명하고 재해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차분한 대응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일방적인 목소리가 판을 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사람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한 계간지에 '박정희시대 경제성장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백 교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한 번은 짚어봐야 할 지적이다. 우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독도 침탈야욕에 대해 비판하고 욕하는 것도 일본이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1842년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한 변호사가 아일랜드계 정치인 제임스 실즈를 비난하는 풍자문을 익명으로 '스프링필드 저널'지에 써 보냈다. 자존심 강한 실즈는 투서의 주인공을 알아내고 결투를 신청했다. 그 변호사는 결투를 반대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미시시피강 모래섬에서 결투를 시작하려는 순간 쌍방 입회인이 중개해 결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간담이 서늘해진 그 남자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이후 두 번 다시 타인을 무시하고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편지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엄 링컨의 이야기다.
서종철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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