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웰빙열풍', '잘먹고 잘사는 법', '아름다운 몸매' 등 몸에 대한 담론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지만 결국 '몸'에 관한 관심인 것이다. 몸에 대한 성찰이 늘어가는 것은 육체와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면서 정신만을 칭송해온 근대적 사유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그 중 여성의 몸이 본격적인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1990년대.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의 해묵은 숙제 같은 주제였다. 페미니즘은 출발부터 몸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있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인가, 사회적인가? 여성의 몸은 신체적 특정 부분을 가리키는 물리적인 것인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상징적인 것인가?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은 여성의 몸에 대한 페미니즘의 고민을 압축하는 말이다.
하지만 여성의 몸을 둘러싼 페미니즘 논의들은 여성이 신체적 특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열등할 수 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에는 공통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
'여성의 몸: 시각·쟁점·역사'는 몸에 관한 여러 가지 논쟁을 짚어보는 책이다. 여성부의 지원으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여성의 몸' 프로젝트에 한국여성연구소가 참여해 여러 차례 학술대회를 거쳐 완성됐다.
1부-시각과 쟁점: 여성의 몸,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서는 지난 세기 몸에 대한 여러 이론적 논의들과 페미니즘이 만나는 지점을 되짚었고, 2부-남성의 환상과 그 너머: 누가 여성을 두려워하는가'에서는 한국문학에서 여성의 몸이 생산되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원리에 접근하고 있다. 3부-포섭과 전복사이: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에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주체적 욕망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여성의 몸과 관련지어 논의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이중적으로 해석돼 왔다. 여성의 몸에서 다소곳한 주부와 요부의 이미지를 모두 원하는 남성적 시각에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분열된다.
식민지 시대, 기생과 카페 여급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몸은 새로운 방식으로 재발견된다. 당대의 기생과 카페 여급은 한편으로는 근대 도시 유흥공간에서 관습적 규범을 위반하는 위험하고 부정한 여성으로 재현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몸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아 물적 토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감각과 욕망에 눈뜨기도 했다.
서지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는 글을 통해 이들의 근대 경험을 통해 여성의 몸이 스스로 쾌락을 발견한 기원이 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성의 육체에서 여성 개인의 성욕망이 발견될 때 여성은 격리되거나 축출된다. 이는 여성의 몸은 타자화되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남성의 시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히스테리, 거식증, 우울증 등 대표적인 여성적 질병이 사실은 무의식적 욕망에서 비롯됐다는 이명호 가톨릭대 외국어문학부 초빙교수와 조현순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의 글은 흥미롭다. 히스테리에서 오이디푸스적 욕망과 전(前)오이디푸스적 욕망을 모두 포기하지 않고 가지려는 여성의 욕망을 읽어낸다. 거식증과 우울증은 이상적인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생산하고 훈육하는 사회에 대한 공모와 항의의 뜻을 모두 담고 있다.
포르노에 대한 성찰을 담은 정소영(서울대 강사)씨의 글은 포르노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억압되는 동시에 그 억압이 파열되는 지점을 드러내고 있다. 포르노는 여성의 몸이 극단적으로 상품화되는 형태이지만 동시에 여성의 주체적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남성적 시선의 체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순간을 포착해서 여성의 욕망을 발견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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