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잠들지 않은 밤, 아쉽지만 잘 싸웠다.

'아쉽지만 후회 없이 싸웠다. 우리는 이미 영웅이었다.'

월드컵 16강의 기로에서 스위스와 마지막 혈전을 벌인 24일 새벽, 대한민국은 잠들지 않았다.

태극전사들의 16강 진출을 바라는 '붉은 마음'으로 대구·경북을 비롯한 온 나라가 붉은 물결을 이루며 다시 하나로 뭉쳤다.

대구 월드컵경기장 등 대구·경북 곳곳에 마련된 거리 응원장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붉은 함성을 이끈 붉은 악마, 찜질방과 호프집 등 TV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나온 사람들, 집집마다 새벽잠을 깨우고 TV 앞에서 마음을 졸인 대구·경북 지역민들. 이들 모두 한마음이 되어 태극전사들의 필승을 염원했다.

장맛비는 물러갔지만 쌀쌀한 날씨를 뒤로하고 이날 새벽 길거리에 나선 22만여 명의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아쉽게 스위스에 패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됐지만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각인시킨 23명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대~한민국"을 환호하며 화답했다.

이날 처음 응원장으로 개방된 대구 월드컵경기장에는 경기 시작 8시간 전부터 시민들이 몰리는 등 모두 6만여 명이 붉은 바다를 연출했다. 이불, 베개 등을 챙겨 나온 시민들도 눈에 띄었고 경기장 밖에는 가족텐트까지 등장했다.

시민 최원석(44·대구 수성구 시지동) 씨는 "아이들이 토요일 학교에 가지 않아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을 기원하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나왔다."며 "비록 아쉽게 스위스에 패하고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열심히 그라운드에 땀을 뿌린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태극 전사 파이팅'을 외쳤다.

6만여 명과 2만여 명의 붉은 시민들이 각각 운집한 두류야구장과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도 경기 내내 천둥 같은 함성이 메아리쳤다.

밤새도록 태극기가 춤을 췄고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1천여 명의 시민이 모인 EXCO대구에도 주로 북구에 사는 주민들이 모여 우리 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전반과 후반 한 골씩 실점한 뒤 우리의 슈팅이 경기 내내 아쉽게 골문을 외면하자 열기는 한풀 꺾였다.

게다가 같은 시각 벌어진 프랑스와 토고전에서 두 골을 넣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도심 곳곳은 한때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로 변했다.

하지만 지난 한일 월드컵 이후 다시 한번 증명된 붉은 해일은 그때의 영광을 재확인하는데 충분했다. 대구·경북 500여만 시·도민들의 붉은 함성은 너와 내가 함께하면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의 외침이었고,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대구·경북을 다시 일으키자는 신호탄이었다.

약속이나 한 듯 붉은 티셔츠를 갖춰 입고 이른 시각 길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안방에서 열렸던 4년 전과 달리 집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대한민국의 투혼을 지핀 우리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또다시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게 하는 선물을 줬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이희만(33·대구 남구 봉덕동) 씨는 "6월 한 달 동안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선사한 태극 전사들에게 감사한다."며 "이젠 다음 월드컵대회의 선전을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때"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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