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가품질 경영대회 대통령상 받은 ㈜성안조명

사무실이나 학교, 오피스텔 등에서 천장에 설치된 형광등을 한 번쯤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형광등 케이스에 '청자표'라는 상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청자표 형광등 기기를 생산하는 업체는 다름 아닌 지역 기업 (주)성안조명이다. 김주권 대표는 "회사명보다 오히려 상표가 더 유명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업체는 지난달 24일 산업자원부가 주최하는 '제32회 국가품질경영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경사도 맞았다.

김주권(70) 대표는 1971년 직원 5명을 거느리고 성안조명을 설립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형광등기기에 발을 담근 건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1950년대 중반 형을 도와 전업사에서 일을 한 것이 계기가 돼 1960년대 중반엔 백열 외등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당시 대구에 같은 업종을 하던 곳이 4군데였는데 5년 내에 모두 문을 닫고 우리만 남았다."고 은근슬쩍 자랑했다.

가정집에 조그만 공장을 마련해 근간히 형광등 조립을 하던 김 대표에게 1970년대 후반 큰 위기가 찾아왔다. 경기가 계속 어려워 판매가 부진한데다 1980년부터 형광등이 KS 인증 명령 품목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조그마한 업체에서 KS 인증을 획득하기가 좀처럼 힘이 들었기 때문에 당시 수없이 포기할까 고민을 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부품 공급업체에서 포기를 만류하며 부품 값을 6개월 동안 미뤄주었다. 덕분에 김 대표는 KS 준비에 총력을 기울였고 1980년 5월 비로소 제품에 'KS 인증'을 붙이게 되었다. 김 대표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마운 일"이라며 "그 업체와는 아직까지 활발한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KS를 획득하고부터는 탄탄대로였다. KS로 품질이 올라가다보니 매출이 쑥쑥 올라갔던 것. 초창기 쥐꼬리만 하던 1년 매출액이 1991년에 10억 원을 기록했고 1998년에는 80억 원까지 치솟았다. 직원 수도 당시엔 90명이 넘었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 그렇듯 IMF 여파가 이 업체에도 찾아왔다. 김 대표는 "IMF 직후 지역의 건설업체인 우방이나 청구가 부도가 나면서 부실채권이 너무 많이 생겨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2000년 할 수 없이 공격 경영을 펴던 전략을 안전 경영으로 바꾸고 거래처를 확 줄이기 시작했다. 직원들도 자연스레 40명으로 줄었다. 김 대표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IMF 터지기 전에 정부 정책 자금을 최대한 이용해 시설 투자를 많이 한 덕분에 이자 부담은 다른 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말했다.

IMF 터널은 2002년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일등공신이 지금 전무로 있는 김성홍(40)씨다. 김 대표의 아들이기도 한 김 전무는 LG에 근무하다 1992년 이곳으로 옮겨 지금껏 김 대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김 전무는 입사 후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도입이나 직원 제안 제도 등 다양한 최신 기법을 회사에 적용했다. 그런 원가 절감 노력으로 2002년부터 매년 매출액이 8% 정도로 급신장하고 있다. 김 대표는 "아무래도 젊은 사고를 가진 아들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며 "조만간 아들에게 경영을 넘겨줄 작정"이라고 미소를 흘렸다.

김 전무는 "올해 초 서울사무소를 개설해 아파트 조명디자인 쪽으로 사업을 확장할 방침"이라고 거들었다. 이를 통해 2010년엔 지금 매출액의 2배인 120억 원을 기록하고 2015년엔 매출 200억 원까지 계획하고 있다. 김 전무는 "앞으로 사업을 계속 확대해 전국에서 첫 번째 가는 종합조명 제조업체로 거듭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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