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영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의 자서전 이름이 '간서치전'(看書痴傳)으로 되어 있다. 이는 그가 자신에 대해 직접 쓴 짤막한 기록문인데 무엇보다 제목이 특이하여 호기심을 끌고 있다. 이 말은 '책만 보는 바보 얼간이'라는 뜻인데 자신을 스스로 비하시켜 붙인 말인 것 같다.
당대의 학자였던 그가 자신을 책만 보는 얼간이라고 표현한 것은 겸손의 미덕도 들어 있는 말이겠지만, 그의 불우한 생애에 자조의 푸념이 담긴 말이라고도 볼 수 있을 법하다. 서자 출신이었던 그는 어릴 때부터 가난하고 몸이 약하여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겪으며 성장했던 매우 불우한 인물이었다.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많은 수모도 겪어야 했고, 벼슬길을 찾는 데도 남다른 설움을 견디어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의 학문적 실력에 비추어 그가 누렸던 벼슬은 중·하위직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다른 독서광이었다.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스스로가 말하기를 "배고픔과 추위 설움과 번뇌, 그리고 기침을 잊기 위해 책을 읽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독서로 자기 인생의 한을 풀려 했다고나 할까. 불우한 환경의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책을 읽는 데 몰두하였다는 그 정신이 너무나 거룩해 보인다. 그가 얼마나 책읽기를 좋아했는가는 다음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먼 북쪽 변방의 겨울 바람소리, 먼 옛날의 귀뚜라미 소리가 책에서 들린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두보의 시 귀뚜라미를 읽고서 느낀 감상을 표현한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일반층이나 학생층에서 모두 이웃나라들에 비교해 떨어진다는 글을 읽었다. 젊은 세대들은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고 학생들은 수험공부에 시달리고 일반 사람들도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를 든다면 옛날의 선비정신 부재현상으로 독서로 정신수양을 하려 하지 않는 점이 그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유흥과 환락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감과 열등의식에 빠져 마음의 수양을 뒷전으로 보내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진 사회가 된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자신을 달랠 수 있는 자기 위안법이 있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독서운동이 일어났으면 한다.
지안 스님(은해사 승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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