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여행] 고구마는 맛있었고 줄기 벗기기는 곤욕이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농촌에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다. 좋은 일은 당연히 먹을거리가 많아져서 입이 심심할 겨를이 없었고 나쁜 일은 그 먹을거리를 위해 중노동(?)을 해야 하는 일이다. 그 많고 많은 수확 중에서도 가장 지긋지긋하고 지루한 노동이 고구마줄기를 벗기는 일이었다. 고구마만 보면 그놈의 줄기가 생각나서 고구마 맛이 달아날 지경이지만 그래도 어릴적엔 따끈따끈한 고구마만한 간식이 어디 있으랴. 고구마줄기를 보면 세상의 먹을거리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한다.

여름방학 신나게 놀다가 평생 방학이면 좋겠지만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개학이 되었다. 공부를 마치고 깨춤 추면서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마루청에 앉아서 고구마줄기를 벗기고 계셨다.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골방으로 숨어들어 생전 보지도 않던 국어책을 꺼내 엄마가 들어랍시고 큰소리로 읽으며 잔꾀를 부렸다. 공부하라고 내버려뒀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엄마는 고구마줄기 벗기라는 소리는 안하셨다.

엄마는 혼자서 그 많던 고구마 줄기를 다 벗기고는 꼭 저녁 밥상엔 고구마 줄기로 만든 음식을 올렸다. 된장 풀고, 마늘 찧어 고추 송송 썰어 넣고, 조갯살을 볶아서 넣어 만든 된장찌개. 그 된장찌개 하나만으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고구마 줄기로 담은 김치는 밥을 세 그릇 먹을까 말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고구마줄기는 살짝 시들해져야 더 잘 벗겨진다고 엄마는 고구마 줄기를 일부러 그늘에 놓고 반나절을 말렸다. 이파리를 뒤로 살짝 넘겨서 죽죽 벗기기 시작하면 자잘한 물방울이 얼굴이며 눈이며 튀었다. 빨간 껍질을 벗기면 고구마 줄기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나중엔 엄마가 어디서 고구마 줄기를 벗기는 비법을 알았는지 이파리가 달린 고구마 순을 소금물에 절였다가 벗기기기도 했지만 번거롭다고 또 다른 비법을 알아 오셨다.

고구마 순이 있는 부분을 잡아 뒤로 젖혀 구부리면서 줄기 아래까지 잡아당기면 껍질 절반이 벗겨졌다. 그리고 양손으로 고구마 줄기를 잡고 반으로 껍질이 남아 있는 쪽으로 구부리고 양쪽으로 남아 있는 줄기를 잡아당기면 아주 쉽게 벗겨졌다. 이 방법은 이미 껍질을 벗길 때 반으로 잘랐기 때문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져 다시 자를 필요가 없었다.

고구마 끝순은 고구마 넝쿨의 원줄기나 가지의 생장점에서 10-15cm정도의 부드러운 줄기와 그 줄기에 붙어있는 잎을 아울러 가리켰다. 이 고구마 끝 순은 우리 국민 누구나 많이 즐겨먹는 음식이이다. 고구마 잎자루보다 영양가가 높을 뿐만 아니라 거의 무농약(無農藥)으로 재배되는 까닭에 저공해 자연건강식품으로 가치가 높다.

고구마는 8월부터 9월까지 제철이기 때문에 고구마 수확 체험을 많이 하고 있다. 고구마 수확 체험뿐만 아니라 제철 농산물 체험은 여러 농촌 마을에서 가능하다. 필자가 지난 1일 경상북도의 주선으로 문경시 마성면의 나실마을과 영주 주성골마을, 칠곡군 원골마을을 다녀왔다.

이곳은 모두 올해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어 의욕적으로 체험마을을 조성하려는 계획이다. 먼저 영주 주성골 마을을 소개하자면 용이 와룡청수에서 물을 마시고 주성동에서 여의주를 얻은 형상이라 하여 주성동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라고 한다.

아무튼 주성골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200여 그루의 소나무 숲이 절경이다. 30여세대가 모여사는 해발 400m의 전형적인 산골마을로 버섯과 산나물체험으로 체험객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 여러 가지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진 않지만 3~40명은 너끈히 체험객을 맞을 준비는 되어있다. 이곳은 산골 특유의 맑은 개울물과 주변의 옥녀봉과 장군봉 허리께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좋을 뿐 아니라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사과 역시 으뜸에 속한다.

주 농산물 및 특산물로는 사과, 산나물, 호두, 두릅, 속청, 송이버섯 등이 있고 앞으로 황토 주택을 짓고 체험농장, 주말농장, 공동취사장, 농산물판매장 등의 사업이 펼쳐질 예정이다.

이 곳 이장인 홍성완(38세)씨는 "산골 인심 그대로 가족들을 맞이해 진짜 산골 인심이 어떤 건지 선 보이겠다."며 도시민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마음 맞는 몇 가족이 함께 수확체험도 하고 산골 인심 맛보러 다녀와도 좋겠다.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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