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우체통이 있는 풍경

'…아직도 우체부는 신작로를 달린다 낡은 자전거 툴툴거리며 하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는 산모롱이에서 그를 기다린다 그는 내 가슴 한켠을 밀고 삐거덕 들어온다/ 사립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아무도 모르게, 내 삶은 잠시 반짝이거나 숙연해 진다// 내 가슴 속에는 우체통이 있다….'

지난 여름 나는, '내 가슴 속에는 우체통이 있다.'라고 썼다. 찌는 듯한 더위와 천둥 우레의 계절을 통과한 자들만이 서늘한 가을의 문턱에서, 삶이 잠시 숙연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꺼워진 옷 속으로 지친 몸 구겨 넣으면서 향기로운 과일의 껍질 같은 묵은 시간의 추억 속에 잠시 젖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은 안락한 여유로움 속에 우리를 오래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의 인식이 사회적인 담론에 편입해 들어가거나 극단의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다 하더라도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에서조차 안락한 휴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나만의 투정일까?

잠도 덜 깬 이른 아침부터 체면도 없이 걸려오는 익명의 전화와 불가항력적으로 쳐들어오는 스팸성 메일에 나는 지쳐 있다. 때로는 파렴치한 문명과 물질의 허섭스레기들이 전파를 타고 몸 구석구석 수북이 쌓인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동시대인의 문제인 동시에,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익명의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지만 그들은 이미 나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휴대전화와 메일주소와 주민등록번호까지 샅샅이 알고 있다고 등 뒤에서 불쑥불쑥 손을 내민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한 음습하거나 비양심적인 매체들의 홍수 속에서 인간은 나사못처럼 해체되고, 숫자로 입력된 수많은 나는 전파를 타고 다만 공중에서 불빛처럼 흩어져갈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서두에서 나는 '내 가슴 속에는 빨간 우체통이 있다.'라고 썼다. 웬 때늦은 우체통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우체통의 은유는 피안이며 내가 나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삶이 문득 덧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없고 숫자만 남아 있다고 느껴질 때, 아름다웠던 유년의 골목길에 쏟아지던 노란 달빛이 그리워질 때, 가슴 속에 우체통 하나씩 세워 보면 어떨까. 낡은 자전거 툴툴거리며 우체부가 달려와서, 꽃잎 같은 엽서를 던져줄 것이다. 오래 전에 당신이 당신에게 부친 깨알 같은 글씨를 기억하는가. 아마 당신은 당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송종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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