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교육프리즘)자기 열등화 전략

유명한 홈런타자가 팔목 부상을 언론에 발표하고 계속 시합에 출전한다고 생각해보자. 다섯 게임 연속 무안타를 기록해도 일반 대중들은 선수의 부진을 비난하지 않고 부상을 안타까워할 것이다. 언론도 치료를 권유하는 논평과 함께 호의적이고 동정적인 보도를 할 것이다. 그 상태에서 만루 홈런을 친다면 '부상 투혼'이라는 활자가 그 다음 날 스포츠난을 큼직하게 차지할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과 바둑을 둘 때 급수를 낮추어 상대를 이기면 허풍을 떨지 않고 실력이 탄탄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진다해도 예상된 결과이기 때문에 비웃음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에드워드 존스와 스티븐 버글러스가 처음으로 이론화한 '자기 열등화 전략(self-handicapping strategy)'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을 일부러 낮게 잡아놓고 만약 실패한다면 그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성공하면 자신의 역량 이상으로 성취한 한 것으로 평가 받으려는 전략이다. 항상 잠재적인 실패 가능성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이 실패를 합리화하거나 변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상당수의 수험생들이 '자기 열등화 전략'을 사용한다. 시험전날 잠을 못 자거나, 시험만 다가오면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픈 수험생이 많다. 이 경우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시험 치러 가는 자녀에게 '잘 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최선을 다 해 끝까지 앉아 있기만 해라.'라고 말한다. 잘 치면 대단한 정신력과 의지의 소유자로 칭찬 받는다. 못 쳐도 잠을 못 자서, 아파서 실력 발휘를 못했기 때문에 비난과 질책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남과의 비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에서는 상당수의 아이들이 잠재적 실패에 대비해 미리 다양한 변명거리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런 전략을 자주 쓰면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능력조차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되어 결국은 변명만 늘어놓는 나약한 사람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부모님들도 부지불식간에 이 전략에 익숙해져 있다. 상담을 하다보면 자녀의 노력과 성취욕구의 결여보다는 몸이 약해서, 친구를 잘 못 사귀어서, 감기약을 잘 못 먹어서 등의 변명으로 자녀의 부진과 나태를 옹호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자기 열등화 전략' 습관과 그 유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회적으로는 결과 중시주의 풍조가 사라져야 한다. 개인은 과정을 중시하고 즐기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낙관적인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일이든 공부든 일단 한 매듭이 지어지면 나쁜 기억들은 툭툭 털어버리고 다시 출발하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의 자세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교육평론가·송원교육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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