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김종흥 장승 깍기 명인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목석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적힌 200여 개의 장승이 서 있다. 부리부리한 눈매, 쫙 벌린 입, 투박한 뭉치 코에 기이한 표정을 짓고서, 장승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제각기 모양과 표정이 다르다. 우락부락한 인상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장승에서 시골 아이처럼 천진하고 어눌해 보이는 장승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하나같이 표정이 살아 있는 모습이다.

이곳에 가면 상투를 틀고 장승을 깎는 장승 명인 김종흥(52) 씨를 볼 수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 이수자인 김씨는 1999년 4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생일이 같아 공연을 마친 뒤 여왕과 축배를 나눴던 그 사람이다.

평범한 농사꾼이던 김씨가 장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부터. 안동군 주최 가훈전시회에 가훈을 넣어 출품한 작품이 호평을 얻자 장승 제작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목조각전문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각종 자료를 탐독한 끝에 자신만의 독특한 제작법을 체득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장승을 무려 3천여 개. 이스라엘을 비롯,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 세계 10여개 국에 400여개, 국내에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공원과 강원도 정동진 조각공원, 지리산 중산리 조각공원 등에 2천600여 개가 세워져 있다.

그의 장승에는 친근감이 내포되어 있다.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고 이해될 수 있도록 다정하고 해학적으로 만드는 것이 특징. 그래서 쳐다보고 있으며 편안해진다.

김씨는 장승이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가장 표현하는 '한국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무서움'으로 대변되는 장승에 대한 이미지를 이해하기 쉽고 다가서기 쉬운 '친근감'으로 바꿔 놓았다. 현대적 감각의 장승을 만들기 위해 채색을 하기도 하지만 화려한 색깔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김씨는 "무서운 장승보다 전통과 지역적 특성을 살려 현대적으로 해석한 해학적인 장승을 만들어 어린이들이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친근감을 갖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장승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음악에 맞춰 현란한 동작으로 10여 분만에 장승을 깎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거나 장승깎기 시범 등을 통해 과거 마을 어귀에 서 있던 장승을 도심 한 가운데로 끌어냈다.

또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사람으로서 전통 복장과 외모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상투를 틀고 수염을 기른 채 고무신을 신고 다니기도 하며, 때로는 사진작가들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2004년 경북 사진대전에서는 그를 모델로 한 작품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씨는 장승을 만들 때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아침에 주로 작업을 한다. "잡념이 생기면 마음먹은 표정을 살릴 수 없어 새벽에 정신을 모아 집중적으로 작업을 한다."고 했다. 김씨는 나무조각가이기도 하지만 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장승을 깎다가도 주말만 되면 탈춤공연장으로 달려간다.

김씨는 몇 년 전부터는 국내외의 장승깎기 시범 행사에 민속학을 정공하는 아들 주호씨(30)를 데리고 다니며 함께 작업을 한다. 대를 잇기 위함이다.

"아들과 함께 하회마을에 장승박물관을 건립, 전국적인 명소로 육성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최재수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