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新 '대구10경' 선정할 때

500년전 선인도 '대구10경' 지어 향토의 아름다움 노래했는데…

"대구10경(大邱十景)을 아십니까?"

볼거리와 얘깃거리가 적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대구. 500여 년 전 대구의 풍광을 노래한 '대구10경'을 지금 시점에서 새로 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나아가 예전의 대구10경을 토대로 새로운 대구의 10경을 선정하고, 이를 문화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대구를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대구 대표음식 10선'(매일신문 8월 25일 10면 참조)에 이어 '대구10경'을 찾아나섰다.

▶대구10경의 어제와 오늘

서거정은 칠언절구로 된 10수의 시를 통해 당시 대구의 자연풍광을 잘 묘사하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삭막해진 대구의 옛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귀한 사료인 셈. 십경에는 금호강, 삿갓바위, 연귀산, 도동측백수림, 동화사, 팔공산, 침산 등 대구의 명소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런 곳들을 배경으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서거정의 시를 통해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0경 가운데 지금까지 옛 모습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곳은 7, 8곳 정도다. 1경으로 꼽은 금호강의 뱃놀이는 당시의 나룻배 대신 지금은 오리배가 강위를 떠다니고 있다. 2경에 나오는 삿갓바위로 일컬어지는 입암(笠巖)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실정. 중구 대봉동에 있는 건들바위를 입암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삿갓을 닮지 않은 건들바위의 모양과 조선시대에 발간된 '대구읍지' 등을 들어 입암이 건들바위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3경으로 꼽힌 귀수의 봄구름 무대가 되는 곳은 연귀산으로 지금의 중구 봉산동 제일중학교다. 4경의 학루는 경상감영공원 부근에 있는 금학루를 가리키는 것으로 누각은 없어졌다.

5경의 남소(南沼)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금의 성당못을 지칭한다는 주장과 영선시장이 들어선 영선지, 또는 서문시장 부근에 있던 천왕당못이란 얘기도 있다. 6경의 북벽향림은 천연기념물 1호인 도동 측백수림을 가리키고, 7경은 동화사의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8경에 나오는 노원(櫓院)은 팔달교 부근에 있던 여관이었으며 9경은 팔공산 설경, 10경은 침산에서 바라보는 일몰을 다루고 있다.

▶10경의 재발견

대구10경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잘 단장된 곳은 입암으로 지칭되는 건들바위.지금은 옛 모습을 어느 정도나마 되찾았다. 건들바위 주변 1천㎡ 공간(길이 120m, 폭 8m)에 물이 흐르는 조그마한 실개천이 만들어졌고, 오른편에는 인공폭포도 갖췄다. 또 분수대와 야간조명도 설치돼 시민들의 휴식처로 탈바꿈했다.

특히 서거정의 10경 시 가운데 입암을 노래한 제2경을 새긴 안내판도 설치돼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태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구시 중구청 한 관계자는 "예전 건들바위에 물이 흘렀다는 역사 기록을 근거로 옛 모습을 되찾아주기 위해 조그마한 실개천과 인공폭포를 만들었다."며 "주민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은 물론 대구의 역사와 경관에 대한 관심을 북돋우는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문학이 흐르는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에 따라 대구의 일상과 경치를 다룬 현대시와 함께 대구10경을 노래한 서거정의 시를 패널로 만들어 시내버스 승강장에 달기도 했다.

▶새로운 대구십경은?

김경민 대구 YMCA 관장은 "대구가 볼거리와 얘깃거리가 적다는 소리를 듣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대구10경처럼 역사성이 있는 곳이 많다."며 "경관자원인 10경을 역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10경을 테마로 한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방안도 추진할 만하다. 대구10경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변성호 향토역사관 학예연구사도 "다른 대도시에 있는 시립박물관이 대구엔 아직 없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전문가들의 깊은 연구를 통해 십경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과 함께 시티투어 코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이정웅 달구벌 얼찾는 모임 대표는 서거정의 대구10경을 토대로 현재의 시점에 맞는 새로운 곳을 추가해 '뉴 대구10경'을 선정, 대구를 알리는 데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만하다고 했다. 그 구체적 예로 비슬산의 진달래 군락, 가창 정대계곡의 단풍, 대구 불로고분에서 맞는 산들바람, 미타봉(팔공산 동봉의 옛 이름)의 운해(雲海) 등을 들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 '대구10경'은?

조선 초기 명신인 사가 서거정(1420~1488)이 당시 대구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된 10수의 시를 남겼다. 원래 '십영(十詠)'인 것을 대구십영(大丘十詠), 대구십경(大丘十景), 달성십영(達成十詠), 달성십경(達成十景)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구십경이 있어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대구의 풍광이 어떠했으리라고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다.

제1경 금호범주(琴湖泛舟·금호강에 배 띄우기)

제2경 입암조어(笠巖釣魚·삿갓바위에서 고기 낚기)

제3경 귀수춘운(龜岫春雲·귀수의 봄구름)

제4경 학루명월(鶴樓明月·금학루의 밝은 달)

제5경 남소하화(南沼荷花·남소의 연꽃)

제6경 북벽향림(北壁香林·북벽의 향나무 숲)

제7경 동사심승(桐華尋僧·동화사 찾는 스님)

제8경 노원송객(櫓院送客·노원에서 손님 보내기)

제9경 공영적설(公嶺積雪·팔공산에 쌓인 눈)

제10경 침산만조(砧山晩照·침산의 저녁 노을)

▨ '뉴 대구10경' 찾기 전문가 의견

대구의 아름다운 경관을 최초로 노래한 분은 사가 서거정 선생으로 원 시제는 '십영(十詠)'이다. 이 시가 시민들에게 널리 소개된 것은 대구시가 발간한 '달구벌'(1977)이라는 책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번역하고, 누군가 해설을 한 이 시는 사가 선생이 편찬에 관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원문이 실려 있다.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자산인 대구십경은 대구 정체성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뭉개진 것은 새로 세우고 틀린 것은 바로잡아 랜드마크화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과 로마의 명소인 '진실의 입' 모두 보잘 것 없는 언덕이거나 하수도 뚜껑에 지나지 않으나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것을 지키고 아낄 때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달성군이 편입되면서 옛 현풍군 영역까지 대구광역시 행정구역이 많이 넓어졌다. 규모에 걸 맞는 새로운 대구십경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정웅(달구벌 얼찾는 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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