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책을 읽는다)살인자의 건강법

살인자의 건강법/아멜리 노통 지음/문학세계사 펴냄

내겐 기벽(奇癖)이 있는데 '잘 읽은 책' 뒤에 한 줄 소감을 적어두는 버릇이다. 하지만 그것이 또 전혀 그 책의 내용과 맞지 않은 듯 해 다시 펼쳐볼 땐 고개를 갸웃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예를 들면 '지식의 발견'이란 다소 빡빡한 담론집 뒷장에 '한 줄 묘비명!'이란 소감이 있는 식인데, 이번에 잘 읽은 책 뒤에도 '여인숙의 낡은 문짝 같은'이란 소감이 적혀 있다. 아멜리 노통의 '살인자의 건강법'이다.

살 날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Pre-texte, 즉 '텍스트 이전의 것'이라는 뜻과 '핑계'로도 읽힐 수 있어 진실과 허위를 아우른다)는 걸어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살이 찐 늙은 작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시시하지 않은 특이한 병 -한 세기 전 '강간 및 살인죄로 감옥살이를 하던 죄수들'에게 증세가 발견된 뒤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엘젠바이베르플라츠 증후군-에 걸린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어쨌든 연구대상이 되어버린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기자들이 몰려들고, 인간 혐오자임을 자처하는 타슈는 극소수에게만 제공한 그 인터뷰에서 기자란 가면을 쓴 독자들의 세속적 관심을 무참히 '죽여'버린다. 그 와중에 나온 니체의 말 '쓴다는 것은 자신의 피를 잉크 삼는 일이오.'

때는 걸프전 발발 전후, 끊임없는 타슈의 질문 '전쟁은 시작되었소?'와 그의 식성(정어리 통조림 국물만 마시기, 크림과 버터를 잔뜩 넣은 꼬냑, 침을 튀기며 카라멜 먹기)은 '죽어' 나간 네 명의 기자들과의 신랄한 인터뷰와 함께 끊임없이 독자인 나를 '놀라게 하고, 동요시키고, 읽는 자세와 독법을 바꾸게 해' 결국은 그 문체와 세계에 질식당하게 만든다.

그리고 '양차대전 사이의 강간을 위한 강간들'처럼 기발한 제목을 가진 타슈의 전 작품을 모두 읽은 여기자 니나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미소년 시절 사촌 레오폴딘과의 완전한 사랑 추구에서 살인을 저질렀음을 드러낸다. 그 '살인의 추억'이 드러난 미완성작의 제목은 '살인자의 건강법'

세간에선 갈리미르에서 출판되지 못한 걸 두고 필립 솔레르스에 혐의를 두고 있다지만, 내 개인적 견해로는 루이 페르디낭 셀린에 좀 더 그 혐의가 가는 책이다 하지만 '여인숙의 낡은 문짝'이란 소감이 아직도 요해가 되지 않는다.

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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