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 12월의 선물

거리에 점등된 크리스마스트리는 활력 넘치는 촛불 같다. 마음 한구석에까지 그 빛이 닿는 시간,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보고 있다. 끝이라는 것이, 마감이라는 것이 비단 저 열병 같은 신춘문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리라.

다이어리 속 지나온 순간들의 나는 이따금 실수와 실패로 풀이 죽어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 기념과 축하로 환호성을 올리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눈물의 미장센이 한 겹 보태져 있기도 했다. 지나간 것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실로 얼마나 많은 순간을 우리는 조바심내며 살아가는가.

날짜 위를 덧칠한 펜의 얼룩, 다급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글씨, 붉은 빗금이 채찍 되어 생채기로 남은 날들까지…. 힘든 시간이었는데 잘 버텨냈다고, 애썼다고…. 수첩 속의 내가 대견해 겨울을 날 등산장갑과 두꺼운 양말 한 켤레를 선물했다. 이로써 1월부터 새벽산책과 저녁운동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는 끝난 셈.

그러고 보니 내게는 복되게도, 아름다운 인연이 건네준 아름다운 선물의 기억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못 말리게도 또' 신춘문예에 기인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신문이다.

몇 해 전, 부경대 동기 서정아가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었을 때다. 특히 신년호는 품귀인 모양이라서 다섯 블록 편의점을 뒤진 수고 끝에 겨우 5부를 샀다고 했다. 통화를 마친 나는 그 신문 100부를 사서 학교로 배달해 준 일이 있다. 물론 다 나눠주질 못해서 방에 죽 펼쳐놓고 한참을 유쾌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당선기사가 실린 신문을 사보고 싶어 알아본바, 가장 가까운 경주 동천동쪽 지국에 전화를 걸었다. 심사평을 보고 싶어서, 라고 말문을 열었다. 여유부수가 있다면 수 부를 사고 싶다고 하자, 배달을 마치고 모아 볼 테니 몇 시까지 오라고 했다.

부산을 출발할 때 빗방울이 떨어지고 하늘은 금세 어두워졌다. 도착이 늦어지자 '비가 오니 천천히 조심해서 운전해 오라.'고 전화까지 해 주던 배려. 밤이 깊은 경주, 황룡사터가 보이는 분황사 주차장에서 비상등을 깜박이며 접선에 성공했다.

소정의 값을 치르려고 하자 '선물'이라며 조수석에 직접 신문을 '앉혀'준다. 게다가, 비오는 날 사용하는 배달용 비닐봉투에 샛노란 귤도 담아 건네주며 저녁을 거른 독자를 챙겼다. 내가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즉답하던 그의 말도 정말, 진심이었다.

'사소한 걸로 고맙다는 말을 다 듣고…, 먼길을 오게 해 미안하다.'며 둘의 대화를 변주(變奏)하던 그의 말, 지금도 곱씹는다. 정체가 이어지는 고속국도에서 귤배를 채웠던 그때의 포만감을 무엇에 비할까. 감사함에 잇닿는 일은 크고 화려한 것에만 있지 않다.

거창한 포즈(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선물은 사실 거창하고 버거운 것이긴 하다)를 취하지 않더라도 어떤 이유에서건 '마음이 짠해지는 선물'은 나를 행복하게 하고, 누군가를 기억하게 하고, 삶을 성실하게 한다. 마음과 온정이 오가는 연말연시, 기회가 된다면 애면글면 함께해온 상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이번에는 한번쯤 '사소한 것'을 선물하자.

그리하여 거리마다 밝혀놓은 聖(성) 12월의 촛불 앞에서, 단순히 긍정적인 기억만으로 과거를 재구성해 인식하는 일로서가 아니라, '고통과 방황을 되새기지만, 찬란한 때를 먼저 기억하게 되는' 선물과도 같은, 행복한 '므두셀라 증후군'에 걸리길 바란다.

혹여 연말 마지막 계획이었을 도전에서 '낙선'이라는 策士(책사)의 접대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文靑(문청))이여, 상심하지 말자. 마음속 들끓는 언어로 한 계절 여미는 마음을 부디 접지 말자.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이미 성탄 캐럴에 맞추어 '신춘문예'의 병증이 농후한 고질적인 '므두셀라 증후군'에 기꺼이 걸릴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가.

p.s. 따뜻한 장갑과 두꺼운 양말을 준비하길. 올해가 아니면 다음해라도 새해 첫날, 신문배달부가 되는 기쁨을 누릴 차례가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을지니!

이민아(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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