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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의 시와 함께] 산이 크게 우니까 희다/임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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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멀고 먼 곳에서의 계시처럼 눈이 내렸다

깊고 적막한 밤의 골짝 골짝마다

눈은 제 몸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이윽고 산이 크게 울었다

산의 수만 개 울음보가 한꺼번에 터졌다

아니다, 품으면 품을수록 제 몸의 온기에 녹아서 짧게 사라져버리는 눈,

그 헛것들을 끌어안으려고 이 적막 속 살아있는

뭇것들이 몰려나와 벌버둥치고 있었다

마구마구 괴성을 내질렀다

숨 가쁘게 숨 막히게 질주하던, 초조와 불안이 내통하여 마침내 폭발하는 소리,

떼서리로 울어 젖히다가 떼서리로 울음 그치는 산,

울음이 커져 갈수록 산빛은 더욱 희어졌다

폭설의 계엄령, 천지간 휘날리는 눈발을 '수만 개 울음보'로 인식한 이가 우리 현대시 100년에 이 시인 말고 달리 있었던가. 북방정서를 대표하는 백석이나 이용악의 작품에도 눈보라를 울음으로 표현한 구절을 보지 못했다. 허나 무진장 무진장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보면 퍼질고 앉아 가슴속 쌓여있던 설움 다 게워내고 싶은 게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매순간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 숨 가쁘게 숨 막히게 질주해야 하는 삶의 굴레. 그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손아귀에서 잠시 놓여나고 싶지 않던가. 깊은 밤 적막 속에서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며, 마침내 폭발하는 묵은 울음보. 그리하여 이윽고 잦아드는 울음 추스르면 오래 운 아이의 말간 얼굴처럼 찾아드는 마음의 평화. 그래서 눈은 그토록 흴 수밖에 없었던가.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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