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바지 계약' 주의보

건설사 중도금 손실…신원 확인 몸살

부동산 시장에 '바지 계약자' 비상이 걸렸다.

주택 시장이 침체되면서 미분양이 늘고 일부 단지는 마이너스 프리미엄에도 분양권 전매가 되지 않으면서 계약 의지가 없는 사람들의 명의를 빌려 '분양 계약'이나 '분양권 전매'를 하는 바지 계약이 성행하고 있는 것.

아파트 '바지 계약'은 주택시장 침체가 먼저 찾아온 부산에서 시작됐으며 대구도 최근 들어 일부 단지가 바지 계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지 계약자에 비상 걸린 건설사들

"처음에는 좀 이상하다 생각했죠. 나중에 바지 계약자인 걸 알고 요즘은 분양권 전매 때마다 조심하고 있습니다."

수성구 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중인 A건설사 분양 소장은 지난 여름부터 몰래 숨어든 '바지 전매자'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일부 계약자들이 돈을 주고 명의를 빌려와 분양권 전매를 한 때문.

A사 분양 소장은 "바지 계약자들은 수백만원 정도의 사례비를 받고 명의를 빌려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바지 계약자가 분양권을 전매 받으면 결국 잔금을 치르지 않게 되고 대출받은 중도금은 건설사가 떠안아야 하므로 대다수 건설사들에 바지 계약자 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건설사마다 분양권 전매 때 신원 확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바지 계약자'로 확인되면 전매를 거부하고 있다.

부동산 업소 한 관계자는 "계약자들도 계약금을 포기하고 사례비를 주면서까지 바지 계약자를 구해 전매를 하기 때문에 손해"라며 "오죽하면 바지 계약자를 구해 전매를 하겠느냐"고 했다.

바지 계약자를 통한 분양권 전매는 분양가격이 비싸거나 아예 거래가 되지 않는 아파트일수록 많으며 보편화되지는 않았지만 지역을 불문하고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부동산 업계의 설명.

분양 대행사 관계자들은 "바지 계약자를 공급하는 업자들이 부산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 바지 계약자도 대부분 부산,경남에 주소지를 둔 경우가 많다"며 "바지 계약자 중에는 본인이 아파트 계약자가 되는지도 모르고 돈을 받고 명의를 빌려주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건설사도 바지 분양

계약자뿐 아니라 아예 건설사들이 바지 계약자를 구하는 사례도 있다. 바지 계약자들을 구해 아파트 계약을 했다가 이달 초 검찰에 적발된 B사가 대표적 경우.

경남 지역에 본사를 둔 B사는 계약률이 저조하자 브로커를 통해 200여명의 바지 계약자를 구해와 금융권으로부터 200여억원의 중도금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들은 "계약률이 떨어지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한 공사비 조달이 어려워지므로 자금난에 몰리면 B사와 같이 바지 계약자를 통한 대출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며 "건설사들의 바지 분양도 부산·경남 지역에서 먼저 성행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적발된 B단지 뿐 아니라 타지역 건설사가 분양한 대구경북 지역 내 또 다른 단지도 바지 계약자를 모아 계약률을 올렸다는 소문이 부동산 업계에서는 돌고 있다.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도 '바지 계약'의 피해 대상이 되고 있다.

팔리지 않는 일부 악성 매물을 건설사로부터 헐값에 '통매입' 한 뒤 바지 계약자를 내세워 금융권 대출로 분양금을 내고 아파트를 임대해 보증금을 챙기는 수법.

이 경우 대출 이자 및 원금이 회수되지 않아 금융권이 아파트를 경매에 넘기게 되며 전·월세 계약자는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는 등 부작용이 크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대구에서는 현재 경매 시장에 나와 있는 2개 단지가 이러한 바지 계약의 피해 단지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세입자 피해뿐 아니라 대출을 한 금융권도 낙찰가격이 대출 원금 이하로 떨어지면서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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