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계난 속 도심직거래 장터 활성화

대구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안모(29)씨는 이달 들어서만 사과 한 상자(1만5천원)와 배 한 상자(2만원), 피데기(반건조오징어·1만5천원) 한 축을 샀다. 사무실 동료들이 너도나도 "고향에서 부모님이 경작한 농산물을 직접 가져와 싸게 판다"며 내놓았기 때문이다. 안씨는 "풍년을 걱정해야 하는 농부들의 마음이 안타까워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훨씬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대형할인점보다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어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유례없는 '풍년'으로 상당수 농산물 가격이 하락한 가운데 도시민들이 앞장서서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풍경이 흔해지고 있다.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는 '직접 농사 지은 유기농 사과 팝니다' '농약 안 친 꿀배 싸게 집으로 배달해 드립니다'와 같은 전단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북구 침산동의 한 아파트 주부 김모(51)씨는 며칠 전 같은 동네에 사는 주부에게 고추 1근에 6천원씩 주고 모두 15근을 샀다. "친척이 고추 농사를 지었는데, 산지 가격이 너무 하락해 품삯이라도 건지게 해주고 싶다"는 하소연에 김씨는 결국 친구들에게까지 연락해 40근의 고추를 팔아줬다. 김씨는 "직거래를 하면 산지 생산자는 유통업자에게 넘기는 것보다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소매가격보다 싼 값에 살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했다.

올해 유난히 도심 속 직거래 장터가 활성화되고 있는 이유는 태풍, 우박 등의 피해가 없어 농작물 전반이 풍작을 이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배추와 무, 배 등은 지난해에 비해 25%가량 가격이 하락했다. 정부와 농협은 지난달부터 배추 10만t(1천㏊)을 사들여 산지 폐기 또는 수출을 하거나 1만t의 배를 산지 폐기하는 등 수급조절에 들어갔다.

도시민들도 농산물 직거래가 싫지 않다는 표정이다. 김장철이 임박하면서 줄어든 지갑에 그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50대 주부는 "아파트 부녀회를 통하면 별도의 장을 열지 않고도 만족스런 가격에 원하는 양을 받을 수 있다"며 "앞으로 이런 분위기가 정착될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온라인 농산물 직거래도 활발하다. 경북도가 운영하는 농산물직거래 사이트 '사이소'(www.cyso.co.kr) 경우 10월 매출이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매출액이 2천100만원을 넘었고, 유명 인터넷 쇼핑몰과 제휴하면서 2주일 만에 매출 건수도 600건을 넘었다. 경북도 식품유통과 관계자는 "유통마진을 줄이고, 경북도가 판매자를 인증해주는 제도를 통해 믿고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은 덕분에 최근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며 "농민과 도시민이 함께 경기불황을 넘는 지혜"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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