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엄친아 콤플렉스

안토니오 살리에르(1750~1825)는 재능 있는 작곡가였다. 궁중악장으로 당대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제1인자가 되지만, 그의 인생은 고통이었다. 바로 모차르트(1756~1791)가 등장한 것이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모차르트에게 천재성을 준 신을 원망하며 살리에르는 평생 열등감에 사로잡혀 변변한 작품도 못 남겼다.

밀로스 포만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를 죽인 장본인으로 그를 지목하고 있다. 평생을 애써도 못 만들 곡을 모차르트가 1주일 만에 뚝딱 작곡한 것을 확인하는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런 극심한 열패감을 살리에르 증후군이라고 한다.

애초에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천재와 凡人(범인)은 같은 체급이 아니다.

최근 유행어 '엄친아'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살리에르 증후군으로 고통받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엄친아'는 '엄마의 친구 아들'의 줄임말이다. "친구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라는 엄마의 말버릇에서 나온 것이다. 외모면 외모, 공부면 공부, 거기에 성격까지 완벽해서 늘 비교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최근에는 '엄친딸'에 이어 '아친남'(아내의 친구 남편), '딸친아'(딸의 친구 아빠)에 '여친남'(여자친구의 친구 남자친구)까지 줄줄이 생겨나고 있다.

'엄친아'는 엄마가 만들어낸 환상이고, 허상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엄마는 자녀들이 완벽해지기를 바라고, 그 대상으로 친구의 아들을 끌어다 만든 것이다.

'엄친아'는 극심한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1등만 기억하는 등수 매기기, 출세 지향, 성공 지상주의의 상징이다.

비교가 나쁜 것은 아니다. 비교가 창의성을 자극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격체는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특히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의 아이에게 '엄친아 콤플렉스' 굴레를 씌우는 것은 상처만 안겨줄 뿐이다.

'엄친아'는 절대 이길 수도 없고, 끝나지도 않는 게임이다. 엄마의 결핍과 욕망이 만든 비뚤어진 자식애다. 자칫 우리 자녀들이 모두 살리에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김중기 문화팀장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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