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목고·자사고 '광풍'…명문대 진학 보증수표?

"달서구나 서구쪽 아이들은 지하철 타고 수성구 학원에 가서 수업 듣고, 수성구 아이들은 KTX 타고 서울 가서 수업을 듣는 형편입니다. 앞으로 대학입시에서 갈수록 특목고가 유리해진다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내고 싶죠."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한 어머니의 말이다.

가히 '광풍'이라고 부를만큼 특목고 열기가 드세다. 최상위권 학생들만 입학하는 '수재들의 리그'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예전보다 지원요건이 완화되면서 '공부 좀 한다' 싶으면 일단 특목고부터 겨냥하고 본다. 경쟁률은 치솟고 오히려 예년보다 합격선도 높아졌다. 대구지역 중 3학생들은 서울과 경기지역 및 부산·경남지역 외국어고에 줄줄이 원서를 냈다. 입시학원 전문가마저 '이상 열기'라고 표현할 정도. 부산에서는 지난달 특목고 입시에서 떨어진 한 중3 학생이 아파트 16층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특목고 열풍인가, 광풍인가

중학교 3학년 한 담임 교사는 올해 특목고 입시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지난 3년간 1, 2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진학지도에 손을 놓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3학년을 맡고 보니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라졌습니다. 몇년 전만 해도 특목고 진학 희망자는 전교에 3~5명 정도였는데, 이제는 반마다 2~4명씩 특목고를 가겠다고 합니다. 특히 올해는 지역간 특목고마다 전형시기가 다르다보니 서울과 경기도, 경남으로 원정 시험을 보러가는 아이들이 매번 너댓명꼴입니다. 그렇다고 특목고 진학률이 높아진 것은 아닙니다."

수성구 모 중학교 한 교사는 특목고 입시에서 학교나 교사가 해줄 역할은 없다고 했다. "먼저 요즘 학부모들이 정말 똑똑합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교사들조차 처음 듣는 특목고 전형자료를 들고와서 원서를 쓰고 싶다고 합니다. 이미 특목고 전문학원측과 상담도 다 끝냈고, 학교에는 그저 통보를 하러오는 셈이죠."

경북도교육청은 최근 전기 고교에 대한 2009학년도 신입생 원서접수 결과, 경북외고를 비롯해 경산과학고, 경북과학고, 포항제철고, 풍산고 등의 경쟁률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경북외고는 150명 모집에 985명이 몰려 6.57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해 지난해 3.5대1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지난해 2.38대1의 경쟁률을 보였던 경산과학고는 60명 모집에 213명이 지원, 3.55대1을 나타냈다. 경북과학고도 40명 정원에 88명이 지원, 2.2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자립형 사립고인 포항제철고는 455명 모집에 541명(1.19대1), 자율학교인 풍산고는 120명 정원에 426명이 지원, 경쟁률 3.55대1로 강세를 보였다.

이미 입시 전형을 끝낸 경기지역 외국어고의 경우 일반전형 전체 지원자는 1만6천660명으로 지난해보다 3천422명이 증가했다. 김포외고는 경쟁률이 무려 15.6대1로 가장 높았다. 이밖에 외대부속 외고 7.7대1, 수원외고 7.3대1, 안양외고 7.2대1, 과천외고 6.3대1, 동두천외고 5.3대1, 명지외고 5.1대1, 고양외고 4.9대1, 성남외고 3.8대1 순이다.

외지로 우수 학생들이 빠져나가다보니 오히려 대구지역 외고와 과학고 경쟁률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9일 마감된 대구외고 신입생 원서접수 마감 결과를 보면, 180명 모집에 433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2.41대1로 지난해 2.76대1보다 떨어졌다. 특별전형의 경우, 지난해 55명 모집에 91명(1.65대1)이 지원한데 비해 올해는 모집정원 44명에 38명이 지원(0.86대1)해 미달됐다. 대구과학고 역시 92명 모집에 231명이 지원해 평균 2.51대1의 경쟁률로 지난해 2.91대1보다 떨어졌다.

◆불안한 중3 교실

기록적으로 높아진 특목고 경쟁률은 예견됐던 일이다. 특목고 전문학원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는데, 과거에는 특목고에 떨어지면 일반계고에 진학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특목고가 아니면 명문대 진학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때문에 최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하는 민사고, 대원외고 등 특목고 중에 특목고는 경쟁률이 비슷하지만 그보다 낮은 커트라인을 보이는 특목고에는 일단 지원하고 보자는 심리 때문에 경쟁률이 치솟은 것"이라고 했다.

중2 아들을 둔 주부 조미연(42·수성구 황금동)씨는 "수성학군의 경우 일반계 고교의 진학률이 상당히 좋은 편이기 때문에 사실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특목고에 대한 열기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그동안 대입에서 다소 불리했던 특목고에 대한 입시전형이 바뀌면서 서울지역 상위권 대학에 가려면 특목고를 반드시 가야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목고 합격선도 크게 높아졌다. 학원 관계자는 "특목고 열풍 탓에 지난해 내신성적 7, 8% 수준이던 현대 청운고와 김해외고의 합격자 평균 내신이 올해 4.0~4.5%로 올랐다"며 "게다가 중복지원이 가능해지면서 상위권 특목고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아래로 몰리면서 전체 합격선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목고 광풍의 또다른 문제는 일찌감치 중3 교실에서 입시 분위기가 확산돼 일반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 가장 큰 이유는 일찌감치 끝내버린 2학기 기말고사 때문이다. 예년보다 한달 가량 앞당겨 치러졌다. 올해부터 서울지역 외고 등 특목고 입시에서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성적까지 반영하면서 생겨난 현상. 작년까지는 2학기 중간고사 성적까지만 내신에 반영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갑자기 서울시교육청이 기말고사까지 포함하도록 바꿨다. 이유는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일부 특목고 지망생들이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했는데 이를 막아보겠다며 내세운 정책이 오히려 혼란을 키운 셈이다.

한 중3반 교사는 "사실 기말고사를 반영하는 특목고에 원서를 낸 학생은 전체 중3 학생의 5%도 채 안 되지만 어쩔 수 없다"며 "예년보다 기말고사가 한달 가량 당겨지다보니 아직 진도를 다 마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기말고사를 치른 과목도 있다"고 했다.

문제는 내신반영이 모두 끝난 상태에서 학생지도가 수월치 않다는 것. 시험만 끝났을 뿐 수업 진도를 마치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은 전혀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 대외활동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영화를 보여주거나 자습을 시키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지난 주부터 고교 원서접수를 위한 학부모 상담이 시작된 뒤 시간이 빠듯해진 교사들은 수업이나 학생지도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특목고 열풍의 이유와 전망

최근 대학입시에서 수능이 어려워지고 또 반영비율도 높아진 대신 내신이 무력화하는 경향을 띠면서 특목고 출신 학생들의 상위권대 진학률이 높아졌다. 이 것이 특목고 진학 열풍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특히 2010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최상위권 대학들은 수능 중심의 선발계획을 밝히고 있다. 입시 전문가들은 상위권 대학들의 특목고 우대 움직임이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한다.

서울대는 2010학년도 정시모집 일반전형 2단계에서 면접, 구술고사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수능 점수를 활용하기로 했다. 1단계에서 정원의 2배수를 선발하고(현행방식과 동일), 2단계에서 다시 수능을 20% 반영한다는 것. 그만큼 수능의 실질반영비율이 높아진다는 뜻으로, 그간 내신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접을 받던 특목고 학생들이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런 현상은 대입 자율화의 실질적 첫 해인 2010학년도에는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서울대는 2010학년도부터 고교 전공을 살려 지원하는 특목고생을 따로 뽑는 '특목고 동일계 특별전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껏 금지해 왔던 본고사형 논술문제 출제도 허용된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뜻으로, 심화학습을 중점적으로 하는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특목고부터 가고 보자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셜대학원 김병준 원장은 "지금껏 특목고에 대해 불리하게 작용했던 대입전형이 다소 균형을 이루는 쪽으로 바뀌고 있을 뿐"이라며 "특히 대구 수성학군의 경우 일반계 고교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굳이 특목고를 갈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 원장은 또 "서울 및 경기권 외고 등 특목고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실제로 지역출신 합격자는 거의 없는 편"이라며 "특목고에 진학해서도 전교 상위권에 들 정도의 성적이라면 몰라도, 대부분 특목고가 대학 진학에 불리하기 때문에 상담할 때도 특목고에 가지 말라고 할 정도"라고 했다.

게다가 2010학년도부터 외고와 국제고의 입학 지역이 제한되기 때문에 올해처럼 타지역 입시 원정길에 오르는 중3 행렬은 사라질 전망이다. 외고 입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모집 단위를 변경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에 따른 것. 그렇다고 해도 특목고 열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 학부모는 "자립형사립고나 외국어고의 경우 연간 학비가 기숙사비를 포함해 1천500만원을 넘는다"며 "대학 등록금보다 많은 돈을 쏟아부어서라도 그곳에 보낼 때는 그만큼 좋은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