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대통령의 오른손, 왼손

재산 헌납약속 1년째 저울질만/참된 자선은 조건없이 베푸는것

자선냄비가 딸랑거리는 歲暮(세모), 이명박 대통령께 들려 드리고 싶은 두 토막의 '자선 이야기'를 모아봤다.

첫째 토막, 성철 스님의 일화다.

'아까운 돈으로 남 도와주고, 몸으로 남 돌봐주고, 마음으로 남을 챙겨줘 놓고 왜 도와준 것 자랑해서 좋은 佛供(불공)을 제 입으로 부수어 버립니까? 참불공이란 남 도운 것을 제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입버릇처럼 자선의 참뜻을 깨우치셨던 그 큰스님이 마산 성주사라는 절을 찾았을 때다. 법당 위에 걸린 '법당 重創(중창) 시주 ○아무개'라고 쓴 큰 간판을 보시고 내심 시주한 신도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그 신도가 찾아오자 짐짓 칭찬하는 듯하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좋은 일 한 것 같은데 간판 붙이는 위치가 잘못된 것 같아.' '왜 그렇습니까?'

'간판이란 남들 많이 보라고 만든 건데 이 산중에 붙여 놔 봤자 몇 명이나 와서 보겠어. 차라리 마산역 광장에 세우자고, 그러면 여러 천, 만 명이 보고 약국 하는 아무개가 법당 고쳤네라고 선전될 것 아닌가. 당장 싣고 역으로 가자구.' '아이쿠, 스님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얼굴이 벌게진 신도, 얼른 간판을 떼다 쪼갠 뒤 절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두 번째 얘기.

세계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랐던 록펠러가 55세에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최후의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으로 이끌려 갔을 때 로비에 걸린 커다란 액자 속의 글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福(복)되다.'

그 글을 보는 순간 지난날의 성공과 富(부)를 향해 앞만 보고 살아왔던 거친 삶에 전율이 느껴지고 눈물이 솟았다. 때마침 입원 수속 카운터 앞에서 병든 어린 소녀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입원비가 없어 울면서 애걸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록펠러는 비서에게 입원비를 대신 내주게 하고 누가 내줬는지는 모르도록 지시했다.

얼마 후 소녀는 기적적으로 회복되고 멀리서 지켜본 록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훗날 자서전에서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고 썼다.

동서양 두 큰 인물의 자선 이야기의 공통점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과 상통한다.

1년 전 선거판에서 방방곡곡 누비며 재산을 내놓겠다고 만천하에 공언했던 이 대통령은 소망교회 신자, 그것도 장로다. '자선을 베풀 때는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고 한 성경(마태오 복음 6장 2절)의 정신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는 그는 자신의 왼손도 알고 이웃도 알고 온 나라 국민들의 손발까지 다 알게 하고도 아직 '잘 쓰여질 방법을 찾아 내놓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1년 넘도록 시주도 하기 전에 법당에 간판만 먼저 걸어놓은 모양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할머니에게 목도리까지 감아준 고마운 대통령의 재산헌납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다. 청와대가 헌납재산이 잘 쓰여지도록 방법을 연구해서 내놓겠다고 굳이 대변하기에 충고 삼아 하는 고언이다.

자선하는 사람이 돈 내놓으면서 '이렇게 나누고 저렇게 써라'는 식의 조건이나 방식의 토를 달면 자선의 정신과 의미는 퇴색된다. 다 내놓고 비우는데 무슨 헌납의 방법이 따로 있고 계획과 형식을 생각하는가?

8천억 원을 내놨던 삼성도, 200억 원을 기부한 대구의 IB회장도, 100억 원을 낸 SK 그룹도 그냥 내놓고 맡기고 끝냈다. 거리의 자선냄비에 푼돈 넣는 서민들도 돈에다 자기 이름 써서 넣지는 않는다. 냄비구멍에 넣으면 끝, 돈 쓰는 계획 같은 건 구세군에게 맡긴다.

그게 제대로 된 자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MB의 재산 헌납은 자선의 때와 방법 두 가지 다 어설펐고 말만 앞서 버렸다. 대통령의 340억 원이 자선냄비 속의 300원보다도 더 적어보이고 따뜻한 감동도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세모 거리의 자선냄비를 보며 안타깝고 답답해서 해본 소리다.

金廷吉 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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