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이 오면서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고 있다. 더불어 아날로그 시대 직업도 사라지고 있다. 첨단 신기술은 블랙홀처럼 아날로그 직업을 집어삼켰다. 매주 한 차례 사라진, 사라져 가는 '추억의 직업' 속으로 들어가본다.
2003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중앙고용정보원에서 펴낸 한국직업사전은 전당포를 사라져 가는 직업으로 분류했다. 대구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전당포는 두 자리 수에 불과하다. 신용카드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으로 1980년대 전성기 이후 급속히 쇠락했다.
전당포의 메카나 다름없었던 동성로에는 ㄱ전당포 한 곳만 남았다. 아카데미 극장 맞은 편 '미화전당포'와 대백 남문에서 30m 떨어진 '가전전당포' 등은 'ㄱ 전당포'와 더불어 동성로의 '유명한' 전당포였다.
1994년부터 ㄱ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김명자(가명·여·66)씨는 "이름도 나이도 내지 않는다면 인터뷰에 응하겠다"며 손사래부터 쳤다. 여자 혼자 있다는 게 알려지면 강도가 들지도 모른단다.
전당포의 규모는 크지 않다. 15㎡ 정도가 될까. 원룸 크기의 공간이면 족하다. 카메라, 노트북, 명품 등 부피가 큰 것은 담보물품으로 받지 않는다. 하지만 방범은 철저하다. 이중으로 잠긴 문에는 사설 경비업체의 지문 인식기가 붙어 있다. 내부에는 컴퓨터, 텔레비전, 전화기가 각 1대씩 있다. 애오라지 텔레비전이 친구다.
"24시간 앉아 있어도 사람이 없어요. 장부를 보면 알잖아. 그러니까 다들 문을 닫았지."
김씨가 넘긴 장부에는 지난 달 17일부터 지금까지 거래내역이 적혀 있다. 단 7명. 모두 반지다. 김씨는 4, 5년 전부터 한양, 가전, 미화, 중앙 등 6군데 전당포가 하나씩 사라졌다고 했다. ㄱ 전당포도 존폐 기로에 서 있다.
"당장 5, 6년 전보다도 3분의 1로 줄었어요. 10월 초에 2년 계약 연장을 했는데 잘 한 건지 모르겠네."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씨는 신용카드의 등장이 전당포업 쇠락의 일등공신이라며 혀를 찼다. 기술의 발전도 한 몫 거들었다. 전자제품은 3, 4개월이면 신제품이 등장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팔찌, 목걸이, 반지 등 금붙이만 취급하고 있는 김씨는 "1년에 200명이 될까 말까"라고 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하루 50명 이상 찾았던 것과는 격세지감이다. 동성로라서 특이한 것도 있다. 전당포를 찾는 이들은 대체로 50, 60대지만 이곳은 젊은이들이 적잖다. 특히 커플링을 갖고 와 맡기는 경우가 많다.
"헤어지고 가져오는 건지는 몰라도 나중에 찾아가긴 하더라고요. 요즘은 금값도 금값이지만 휴대전화가 있잖아요. 약속된 날짜가 가까워지면 문자를 넣어줘요. 일종의 고객 서비스지."
일종의 담보 대출인 전당포는 월 4% 이자를 물린다. 금붙이는 가격의 90%까지 돈을 내준다. 찾아가는 사람도 90% 이상이다.
대구의 전당포 개수를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림잡아 50개 안팎으로 추산된다. 1961년 전당포영업법 제정 이후 1999년 법령 폐지, 현재는 자유업종으로 분류돼 있다. 1999년까지 전당포의 허가를 담당했던 대구경찰청 생활안전계는 "10년이 지나 그 시절 자료가 폐기처분됐다"고 했다.
대구 중구 약전골목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ㅈ 전당포. 1997년부터 이곳을 밑천으로 밥줄을 잇고 있는 임상섭(55)씨에게서 1993년 전당포업협회 회원사의 주소록을 입수할 수 있었다. 임씨는 "지금은 숫자를 알 수 없다는 게 정확한 말"이라고 했다. 자유업종이기 때문에 금은방에서도 장신구를 담보로 급전을 내주기 때문이었다. 임씨의 말대로 현재 전당포는 숫자를 가늠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1993년 당시 대구(달성군 제외)의 전당포 수는 143곳이었다.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은 10여곳을 합하면 150여곳의 전당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30% 정도만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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