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판야구] 해결사 4번타자의 책임감

타격은 타고난 소질에 좌우된다고 하지만 4번 타자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야구에서 4번 타자란 대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뒤돌아보면 역대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한번 4번은 영원한 4번'은 이만수뿐이었다. '양신(神)'으로 인정받은 양준혁도 4번은 스쳐가는 자리였고 '킹'으로 불렸던 이승엽마저도 그의 야구 인생에 4번으로 나선 타석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외국인 타자나 마해영, 심정수 등이 4번의 역할을 맡기도 했으나 기복이 심해 오래가지 못했다.

28년 프로야구 역사에 적어도 장종훈이나 김동주, 이대호, 김태균처럼 붙박이로 4번을 친 선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야구의 기본 설계는 선취 득점을 위해 준비된다. 진루와 작전 수행을 위한 1, 2번 타자를 두고 스코어링 포지션을 염두에 둔 3, 4, 5번을 배치하는데 이 과정에서 4번 타자에 결정력을 요구하는 상황이 확률적으로 가장 많이 발생한다. 또한 기회의 측면에서도 1번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구조는 최후의 순간에 다시 한번 역전을 노려볼 만한 중요한 수단이 됨으로써 중심 타선의 비중이 곧 승패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야구의 구성에서 중심 타선은 상대를 긴장하게 할, 정교하고 매서운 타자로 구성해야 하고 그 중 4번 타자는 중량감이 높은 선수로 배치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평소의 실력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쟁취하면 자신감도 증가돼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무엇인가 이루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 조금씩 중압감의 늪에 빠지게 된다. 선수들은 누구나 동료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데 중책을 맡은 선수가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지나치게 가지면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해 결국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파워를 겸비하면서도 정교한 타격 솜씨로 삼성 시절 줄곧 3번 타자를 맡았던 이승엽도 4번 타자로 나서서는 의외로 몇차례 슬럼프에 빠져 중압감을 호소했다.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에서도 결승 홈런을 쳐 영웅의 역할을 해냈지만 후에는 눈물로 무거웠던 4번 타자의 책임감을 털어놓았다.

인간은 때로 주어진 책임감을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로 느낄 때가 있다. 책임을 다함으로써 스스로 존재감을 느끼지만 그렇지 못할 때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4번 타자란 중책은 자질과 함께 마인드컨트롤 능력을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선수 시절 이만수는 팀이 6연패에 빠져 자신의 부진을 묻는 기자에게 "야구 하루 이틀 합니까?"라고 웃으며 대답하고는 밤새 스윙 연습에 매달렸다. 노력하는 자신을 믿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만수의 뒤를 이을, 삼성 라이온즈의 붙박이 4번타자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남다른 파워를 갖춘 채태인과 천부적인 소질의 박석민, 팔로스윙의 달인 최형우, 혹 FA로 삼성으로 올지 모르는 이범호가 그 후보들이지만 명심할 것이 하나 있다. '진정한 4번타자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극복한다'는 사실이다.

야구해설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