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종전과 함께 시작된 냉전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이다. 그는 누적된 내부 모순 때문에 소련이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기존 노선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임을 알고는 있었다. 변화해야 하지만 대안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의 비극이었다.
그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로 소련을 구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사회주의 구원을 위해 소련에 남겨진 유일한 길은 1956년 헝가리, 1968년 체코에 그랬던 것처럼 자유화의 물결을 무력으로 분쇄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이것을 포기했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군주의 두 가지 길 즉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전자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 밖에서는 사랑받았지만 조국에서는 모욕과 멸시의 대상이 됐다. 1985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이어 1990년 오늘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이듬해 보수파의 쿠데타로 실각하면서 쓸쓸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련 해체 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지만 시대는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1992년 설립한 고르바초프재단의 운영난 해소를 위해 피자헛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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