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세계 디자인 도시를 가다/김미리 최보윤 지음/랜덤하우스 펴냄

매력적인 도시…답은 디자인에 있다

바르셀로나 근교 휴양지 시체스
바르셀로나 근교 휴양지 시체스

디자인으로 거듭난 세계 6개국 12개 도시를 탐방한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어울리는 도시 디자인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디자인 도시를 강조하는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역시 도시 디자인이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 공원일대 리모델링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시점이어서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우리는 성장에 무게를 두느라 디자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도시 디자인' 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그러나 추진 방향은 좀 엉뚱해 보인다.

'도시 디자인'은 단순히 아름다운 구조물을 만들거나 예쁜 간판을 달고 곳곳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 하는 청사진을 제시한 뒤 그에 알맞게 도시를 꾸며가는 과정이 '도시 디자인'이다. 그러니까, 도시의 어제와 오늘, 정체성에 어울리게 도시를 단장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진정한 도시 디자인이란 도시에 콘텐츠를 입히는 것"이다. 도시 디자인으로 세계의 모범이 된 일본 요코하마의 전(前)시장 나카다 히로시는 "창조 도시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보는 대상'에 그쳤던 건축물을 '쓰는 대상'으로 바꿔 새 기능을 창조하고, 시민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고 강조한다.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엇을 개발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만 있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개발이 안 된 탓에 한국 근대화 당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구 중구의 북성로, 포정동, 향촌동, 종로 등은 이 말에 꼭 적합한 공간일 듯 싶다.)

일본의 디자인 혁명도시 가와고에(川越)는 '주민 참여' 디자인이 돋보인다. 도쿄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인 가와고에는 일본의 오랜 전통 도시다. 에도 시대(도쿠가와 막부 정권을 에도 시대라고 하며 지금의 도쿄는 당시 에도라 불렸고 그래서 에도 시대라고 칭한다)에 에도에 필요한 물자를 보급해왔기에 '작은 에도'라 불리는 전통 도시다. 이 도시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통 거리 '이치반가'(一番街)는 우리나라의 인사동처럼 전통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1970년대 일본 전역에 개발 열풍이 불었고 가와고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0년대에 이르자 가와고에의 전통 거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주민들이 '전통을 살리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스스로 모임을 결성했고 상인, 전문가, 지자체 등이 참여해 '이치반가 거리 만들기 위원회'가 꾸려졌다. 목표는 '전통 가옥을 보존하고 상가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전통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의 특징인 전통과 역사를 자원으로 상업 활성화에 도전한 것이다.

위원회는 반상회처럼 운영됐다. 그들은 420m에 이르는 전통 거리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건물 높이를 2층으로 제한했고 간판의 색깔도 일정한 톤을 유지했다. 디자인이라면 화려함을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가와고에는 전통 가옥의 색깔인 검정색에 맞추어 채도를 조절했다. 우체국이나 우체통도 검은색이고 길가 건물의 주차장 셔터도 검은색이나 회색이다. 간판은 검정과 나무색으로 통일감을 주었다.

1989년 5개 점포가 이 계획에 따라 리뉴얼을 마치자 도미노처럼 전통 가옥 보존 바람이 불었다. 마을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전통 문양과 소품 가게가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이 증가했다. 새로 간판을 바꾸거나 외관을 꾸밀 때는 반드시 위원회를 소집해 주민 전체의 의견을 듣고 반영했다. 매달 한 번씩 반상회처럼 위원회를 열어 마을의 변화상을 점검했다. 주민들이 이처럼 나서자 지방정부 역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가와고에는 그렇게 세계 최고의 디자인 도시가 됐다. 도시는 아름다워졌고 상업은 활성화된 것이다.

'도시 디자인이란, 단순히 외관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다. 첨단으로 무장한 개발은 더구나 아니다. 진정한 도시 디자인이란 그 도시의 정체성을 살리는 디자인이다. 그렇게 도시를 디자인함으로써 거기에 사는 주민의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가와고에는 도시공공 디자인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일본 가와고에뿐만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수많은 도시들은 단순히 외관을 꾸미는 대신 그 도시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미래를 디자인했다.

독일은 애물단지가 된 폐공장과 건물과 기물을 그대로 활용해 새 공원을 꾸몄다. 요코하마의 공공 디자인은 도시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서 시작됐다. 뉴욕은 버려진 산업철도를 공원으로 꾸미면서 이색적인 산책로를 가지게 됐다. 런던은 쓸모가 없어진 화력발전소와 수력발전소를 개조해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파리에서 2시간 거리인 스트라스부르 역은 구(舊)역사를 허무는 대신 신 역사로 구 역사를 감싸면서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었다.

도시 디자인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참여와 지방정부의 협력, 장인 정신이 필수적이다. 일본 요코하마시 도시정비국의 공무원 쿠니요시 나오유키씨는 1971년 디자인팀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도시 디자인 업무만 담당하고 있다. 그는 요코하마의 뒷골목까지 제 집처럼 꿰고 있다. 시장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기 십상이지만, 일본 요코하마는 디자인에 관한한 '옛 것과 새 것의 조화'라는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쿠니요시씨 역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처우가 좋은 다른 부서로 발령 제의가 왔지만 그때마다 고사하고 디자인 정책에만 매달렸다. 덕분에 요코하마는 '도시 디자인'으로 세계에서도 이름난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지은이들은 모두 조선일보 기자들로, 미국, 독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일본 등 6개 나라, 12개 도시를 누비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각 도시의 다양한 디자인 사례는 우리에게 적합한 도시 디자인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323쪽, 2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