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한국을 이끈 60명의 엔지니어 중 한 명(서울대·공학한림원 선정), 하이닉스반도체 회생의 주역, 한국 반도체산업의 풍운아…. 하이닉스반도체 최진석(52·신사업제조총괄본부장) 부사장에게 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그는 첫 직장이었던 삼성반도체에서 18년 동안 근무하면서 한번도 받기 어렵다는 삼성그룹 기술대상을 세 차례나 받았다. 능력을 인정받아 차부장 5년만에 이사대우로, 그 1년 후에는 상무로 고속 승진하기도 했다. 2001년 말 하이닉스반도체로 옮겨서는 수조원의 적자를 내며 허덕이고 있던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고 세계 2위의 D램 업체로까지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140nm급 D램을 개발한 후 1개월만에 수율(합격품 비율) 60%를 달성하면서 업계를 놀라게 했다. R&D 분야에서만 일해왔지만 2003년부터는 제품 생산을 책임지는 제조본부장까지 맡아 세계 최고 수준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국내외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반도체의 날에는 대한민국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최 부사장 때문에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임직원들을 호되게 질책했던 일화도 업계에서는 유명하다.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의 D램 수율이 삼성을 추월했던 게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그렇게 만든 주역이 다름 아닌 삼성 출신의 최 부사장이란 점도 작용했을 듯하다.
그의 오늘이 있게 한 동력은 뭘까? "맡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 의식과 이를 위해 쏟아부을 수 있는 열정, 그리고 매사 긍정적인 사고로 위기를 정면 돌파해왔던 게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또한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솔선수범형 리더가 되기 위해서도 노력해왔단다. 직원들에게 10시간 일을 시키려면 자신은 12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는 게 소신이며, 회사가 어려웠을 때는 사무실에 야전 침대를 두고 직원들과 함께 밤을 새워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능력을 인정받고 잘 나갔던 삼성에서도 회사 사정 등으로 떠밀려 나왔고, 자신이 살려냈던 하이닉스반도체에서도 조만간 내몰릴 신세로 전락해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사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현대전자출신 인사가 신임 사장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그는 기술고문으로 물러날 예정이다.
"매번 최선을 다해 왔지만 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고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습니다. 지난 일을 빨리 잊고 새로운 구상을 함으로써 더 큰 것을 이뤄낼 것입니다." 그는 1년 정도 일선에서 물러나 쉬면서 반도체산업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한 뒤 거취를 결정할 계획이다.
대구 출신인 그는 지역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산업분야를 찾을 것을 조언했다. "대구의 의료기술과 전자공학 수준은 세계적인 만큼 이들을 접목시키는 새로운 의료기기산업에 매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대학을 비즈니스센터로 생각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또 "KTX 개통으로 지역경제가 황폐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정차역이 있는 대구와 경주 등지에 수도권의 주말 휴가인력을 유인할 수 있는 레저산업을 육성하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일에만 파묻혀 살다보니 개인적으로 여가 활동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웠단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 12시가 돼야 귀가하기 일쑤였던 것. 매일 출근하기에 앞서 30분 정도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함으로써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고 있단다.
2선으로 물러나게 된 그가 향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하이닉스에 이어 또 한번의 성공 신화를 이뤄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대성초교·성광중·대륜고·경북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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