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축구보다 못한

축구 한일전 결과가 온통 화제다.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벌어진 친선경기에서 한국이 강한 조직력과 힘, 세련된 기량으로 일본을 압도했다. 어저께 경기는 일본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한판이었다. 지난 2월 동아시아 대회 패전에 대한 설욕의 기회인 동시에 화려한 월드컵 출정 자축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일본의 기대에 한참 빗나갔다. 감독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월드컵 4강이라는 허황한 목표를 내세운 협회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한국에 패해 일본 열도가 이렇게 충격에 빠지고 혈압이 오른 것도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일본 축구팬들은 이날 태극전사가 보여준 강한 체력과 조직력, 악착스런 승부욕을 부러워했다. 분하지만 일본 축구에는 없는 강인함을 인정한 것이다. 세밀한 패스를 바탕으로 한 아기자기한 기술 축구에 발목 잡힌 일본 축구의 입장에서는 힘과 조직력의 한국 축구가 큰 벽처럼 느껴졌을 터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축구가 혼란에 빠졌다"고 했고, 산케이는 "이런 내용으로 일본에 희망을 걸 수 없다"며 질타했다.

천안함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분열 양상은 일본 축구와 꼭 닮았다. 기습공격에 허 찔린 후 우왕좌왕하던 정부가 겨우 물증을 찾아 한숨 돌리고 있는데 정치권은 이를 선거 표로 연결시키는 데 골몰하고 있다. 특히 천안함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온 야권과 그 주변세력들은 북한에 대해서는 벙어리가 되었으면서도 입만 떼면 '대통령 사죄'니 '책임자 처벌'이니 떠들고 있다. 아직도 케케묵은 '북풍' 카드나 꺼내 들고 '안보 장사' 들먹이는 행태를 보면 묘책이 없다고 해야 할지, 잔수에 밝다고 해야 할지.

이런 우리의 자화상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글자가 있다. 발 얽은 돼지걸음 '축'자다. 돼지 발이 서로 엇갈렸으니 뒤뚱거리다 나둥그러질 수밖에 없다.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도 문단속 못했다고 탓하고, 온갖 설과 의혹으로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으니 나라 꼴이 참 딱하다.

흔히 행동거지가 어리석고 바르지 못할 때 상대를 낮춰보며 '축구만도 못한 놈' '어이구, 축구야'와 같은 표현을 쓴다. '쌓다'는 뜻의 축(畜)과 개 구(狗) 자를 합친 한자어인데 가축보다 나을 게 없다는 욕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두고 축구(蹴球)보다 못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축구(畜狗)만도 못하다고 해야 할지….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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