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경치일(大慶恥日)

한 나라가 치유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한 날을 '국치일'(國恥日)이라 한다. 조선은 청나라에 항거하다가 1637년 1월 30일 임금(인조)이 청 태종에게 삼전도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땅에 찧는 예를 올리며 항복했다. 역사는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 부른다. 이 대가로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 나라가 됐으며 매년 감당하기 어려운 조공을 바쳤다.

1910년 8월 29일은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날이다. 일본의 조선총독 데라우치와 조선의 총리대신 이완용, 농상공대신 조중응, 윤덕영 등이 합세해 조선과 일본의 합병을 반포했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하고 이후 36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됐다. 이날을 '경술국치일'이라 부른다.

2011년 3월 30일은 대구경북 나아가 영남인 모두가 절망감에 빠진 날이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확정해 놓고, 정부가 나서서 영남 지방 자치단체들끼리 경쟁을 시키더니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이날 백지화를 발표했다.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각급 연구기관의 분석은 완전 배제한 상태에서 지역의 절박한 실정을 외면한 국토연구원의 보고서만 참고로 삼았다. 국토연구원은 수심 20m를 메워야 하는 가덕도를 밀양과 조성 공사비가 비슷하게 든다고 엉터리 분석을 한 바로 그 연구기관이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는 2009년 말 완료된 국토연구원의 용역보고서 결과와 불과 '0.001'점 차이가 나는 초정밀 보고서를 만들었다. '짜맞추지 않고는 낼 수 없는 수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는 수도권론자들이 '우리나라에 지방이 필요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하늘길을 열어야 지방이 산다'는 주장에 대해 '왜 지방에 또 하나의 적자 공항이 필요하냐'는 논리를 갖다댄다.

정부가 내세운 경제성 논리는 허구임이 지역 연구기관들에 의해 입증됐다. 대구경북만 하더라도 인천공항 추가 접근 비용은 연간 6천억 원에 달한다.

애당초 정부와 수도권론자들은 동남권 신공항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평가위원들이 채점도 하기 전에 이미 합격자가 없다고 공포를 해버렸다. 수도권 나팔수인 서울 지역 신문과 방송들을 대거 동원, 백지화 정지 작업을 벌였다.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3월 30일은 대구경북이 수도권론자들에게 놀아난 굴욕일, 즉 '대경치일'임을 똑똑히 기억하자.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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