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토다큐] 대구 캠프워크 헬기장 주변 소음·진동 시달리는 주민들

귀가 찢기고, 지붕이 날아가는데…수십년 이 고통 누가 알까

동네는 평온해 보였지만 마치 유령촌 같았다. 대구시 남구 대명5동 미군 캠프워커 헬기장 활주로 옆 주택가. 40여 호의 가옥들이 군부대 담장에서부터 조각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골목에는 빈집투성이다. 빈집 마당에는 나무가 자라고 잡초가 무성하다. 철제 문틀을 뜯어가 난장판이 된 집도 있다. 어떤 집은 기와지붕이 폭삭 내려앉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40여 호 가운데 11가옥이 이렇게 폐허로 변했다. 주민들은 "미군 헬기 소음과 진동에 시달리다 못한 이웃들이 집도 버리고 이사를 간 것"이라며 목청을 높인다.

이 일대는 미군헬기가 이착륙하는 비행안전구역. 수년 전까지 덩치 큰 전투헬기가 이륙할 때는 고막을 때리는 굉음과 함께 집채가 진동했다. 헬기 날개 바람에 슬레이트 지붕이 휴지조각처럼 날아가기도 했다. 비가 줄줄 새는 슬레이트 지붕을 고치다 못해 강철 패널로 뒤덮은 집도 여럿이다. 수천만원씩 든 수리비는 고스란히 주민들 몫으로 남았다. 시 부지에 집을 짓고 사는 주민들은 벌금까지 물며 지붕을 고쳤다.

지금도 가옥들은 벽체 곳곳이 돌 맞은 유리창처럼 갈라져 있다.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수시로 땜질한다. 수십 년간 고치고 덧댄 탓에 가옥들이 죄다 누더기처럼 변했다.

헬기 소음은 더욱 견디기 힘들다. 전국군용비행장 피해주민 연합회 최종탁 회장이 수년 전 이곳에서 헬기 소음을 측정한 결과 최대 120㏈까지 나왔다. 이런 소음에 장기간 노출되면 혈압 이상, 정신질환, 임신장애 등이 우려되는 수준이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심장약을 입에 달고 산다. 헬기가 뜨면 두통과 울렁증이 재발한다. 난청과 불면증을 호소하는 주민도 있다. 헬기장을 코앞에 마주하고 사는 한 주민은 난청이 심해 보청기 착용을 고려 중이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소음 피해보상 소송도 직접 제기해 봤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6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 차태봉(71) 씨는 헬기 소음과 진동 피해의 산증인이다. 그는 1982년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29년째 대통령, 국방부, 주한미군,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대구시 등에 홀로 외로운 진정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동안 각계에 진정을 낸 특수우편물 수령증이 57장에 이른다. 한평생을 이렇게 보내다 보니 남은 것은 약봉지뿐. 차 씨는 지금도 신경안정제로 버티며 살고 있다. 그는 스스로 "미군 헬기 소음과 진동에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받으며 살아온 한 많은 희생자"라고 말한다.

차 씨는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캠프워커 내 H-805 헬기장과 동편 활주로 부지가 반환되면 헬기 소음도 다소 줄고 열악한 주거환경도 개선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부지 반환 결정에는 대구시와 남구청, 지역 국회의원 등 각계의 노력이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29년 동안 끈질기게 투쟁한 한 주민의 힘이 보태진 결과다.

단지 미군 헬기장 옆에 산다는 이유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주민들. 이들은 어쩌면 미군 주둔의 불가피성 때문에 국가로부터 희생을 강요받아온 것이나 다름없다.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이 주민들에게 복지는 무엇인가. 어떤 게 공정사회인가. 유령촌 같은 이 동네를 찾아 주민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라. 이곳에도 꼬박꼬박 세금 내는 대구시민들이 살고 있다.

사진·글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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