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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가족] ②무너지는 다문화가정…말 안통하는데다 폭력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한 결혼이민여성(오른쪽)이 4일 오전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상담받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한 결혼이민여성(오른쪽)이 4일 오전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상담받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필리핀 출신 A(40'대구 달서구) 씨는 지난해 10월 결혼 10년 만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A씨가 이혼을 결심한 것은 남편의 언어 폭력때문이었다. 남편은 늘 A씨를 무시하는 말투와 행동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임신을 하자 "너처럼 얼굴 까만애가 나오면 어쩌냐"는 말을 툭툭 내뱉었고, 말다툼이 나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일삼았다. A씨는 "남편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개를 떨궜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다문화가정이 우리 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무너지는 다문화가정도 늘고 있다. 위장 결혼이나 남편의 폭력이 주된 이혼 사유지만 부부 간의 문화적 차이나 시댁 식구의 냉대 등을 이유로 이혼하려는 결혼이민여성들도 적지 않다.

◆갈라서는 다문화가정 급증=대구지역 다문화가정의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 전체 이혼 건수가 줄어드는 것과는 반대 양상.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69건이었던 한국남성과 외국여성 가정의 이혼은 5년 만인 지난해에는 276건으로 4배 증가했다.(표 참조) 반면 대구의 전체 이혼 건수는 2005년 5천916건에서 지난해 5천107건으로 13.7% 감소했다.

다문화가정이 외국 여성의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을 꾸리는 경우가 많은데다 말이 통하지 않아 부부 사이에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

김정옥 대구가톨릭대 교수(생활복지주거학과)는 "배우자와 나이 차이가 열 살 이상 나는 경우가 많고 말까지 통하지 않으니 갈등의 불씨를 안고 출발한다"며 "남편이 '돈을 주고 사왔으니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도움받을 곳도 없다=베트남 출신 이모(30) 씨는 남편의 폭행으로 4년 전 이혼한 뒤 8살 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공장을 다니며 매달 130만원을 벌지만 어린이집 보육료 80만원을 내고 근근이 버티고 있다.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 등록신청을 했지만 '나이가 젊고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경제적 자립이 힘든 결혼이민여성들은 이혼 후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거나 자녀 양육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들 다문화 모자(母子) 가정이 도움을 받을 곳은 없다시피하다. 특히 한국 국적이 없는 경우 자녀와 함께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곳은 아예 없다. 대구의 경우 국비 지원을 받는 이주여성전문쉼터는 '보현이주여성쉼터'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1순위여서 들어가기가 힘들고 쉼터 정원도 15명에 불과해 급증하는 다문화가정의 구호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급증하는 이혼 줄이려면=전문가들은 다문화가정의 해체 위기를 극복하려면 한국인 남편과 시댁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은 지난해 한국인 남편을 위한 베트남어 강좌를 열었지만 수강자가 단 1명에 불과해 결국 폐강했다. 이곳 김선규 사무국장은 "문화적 배경과 언어가 다른 사람과 결혼 생활을 이어가려면 몇 배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남편들이 많다"고 했다.

강혜숙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결혼이민여성들이 남편과 갈등을 겪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을 설립해 또다른 사회문제화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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