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찾아서] 25. 말 습관 바꾸기부터

말의 씨앗은 뿌린대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요? 7년 정도 세월이 흘렀으니 꽤나 컸을 겁니다. 아이들 뒤에 짙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로 눈길이 갑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요? 7년 정도 세월이 흘렀으니 꽤나 컸을 겁니다. 아이들 뒤에 짙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로 눈길이 갑니다. '동구 밖'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과수원길이 떠오릅니다. 어릴 적 시골 마을엔 늘 동구 밖을 알리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개울물이 흘렀죠. 멱을 감다가 지칠 때면 그곳으로 모여들었고, 커다란 종이부채로 더위를 쫓는 마을 어른들이 마냥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요즘은 어떤가요? 아파트단지 놀이터에 가도 함께 놀 아이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크면 기억 속에는 학원 밖에 없을 겁니다. 과연 행복한 추억일까요? 사진=연종영(제48회 매일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가작) 글=김수용기자
행복은
행복은 '영화보기'다. 가족들이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날이면 P2P에서 받아놓은 영화를 자주 본다. 그리고 주말이면 아이가 볼 수 있는 영화를 골라서 온 가족이 거실에서 즐긴다. 평소에는 아내와 아이가 깰까봐 소리죽여 봤지만, 이때는 볼륨도 높이고 우퍼까지 빵빵하게 틀어댄다. 시원한 맥주랑 안줏거리, 아이에게는 우유 한 잔과 과자면 집안은 온통 우리 가족만의 영화관이 된다. 아이는 영화 시작하기 전 집안의 모든 불을 끈다고 난리다. 깜깜한 거실에서 소파에 느긋이 앉아 즐기는 영화는 우리 가족의 또 하나의 행복 조각이다. 글/일러스트=고민석 komindol@msnet.co.kr

술자리를 즐기는 남자들끼리 불문율처럼 지키는 말이 있다.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밖에서 말하지 않는다.' 술 한 순배가 돌면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오고, 두 순배를 마시면 정치 이야기가 술상에 오르고, 세 순배를 털어 넣으면 자기자랑이 나오고, 네 순배쯤엔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이 시작된다. 이 때문에 술자리 말은 거기서 끝내는 게 좋다.

◆싸움을 부르는 부정어

그런데 술이 몇 순배 돈 뒤 꼭 고함소리가 나는 자리가 있다. 시시껄렁한 주제로 의견다툼이 생기는 경우다. 가만 듣고 보면 참 우습게도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결국 "내 말이 그 말인데 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해"라며 끝이 난다. 이런 상황이 생긴 대화를 곱씹어보면 이렇다. 가령 A씨는 "반값 등록금 때문에 난리야. 웬 등록금이 그렇게 비싸!"라고 말거리를 꺼낸다. B씨는 "그게 아니라, 등록금을 받아서 어디에 쓰는지 제대로 안 밝히니까 문제지"라고 되받는다. A씨는 다시 "아이 둘 대학 졸업하면 빚더미에 오를 판이야"라고 말하고, B씨는 "아니 들어보라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다 대학 간다고 설치는 것도 문제야."

이런 대화가 몇 차례 오가자 A씨는 "넌 왜 말끝마다 토를 달아. 내 말이 틀렸어?"라며 벌컥 화를 낸다. B씨도 이에 질세라 "그게 아니라 자꾸 네가 한쪽만 이야기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따지면 내 말은 뭐가 틀렸냐"라고 반격한다.

어찌 됐건 등록금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동감하면서 두 사람은 왜 싸움소처럼 뿔을 세우게 됐을까? B씨의 말버릇 때문이다. 습관처럼 말머리에 '아니' '그게 아니라' '들어보라니까'를 반복한다. 결국 자신도 같은 말을 하면서 앞사람 말을 습관처럼 부정하고 나서야 자기 말을 시작한다. 반대로 '그래' '그럴 수도 있어' '맞아. 그것도 문제야'는 식으로 앞사람 말을 일단 긍정하면, 뒤에 부정적인 말을 덧붙여도 앞사람은 뒷사람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는다. 술자리 일은 나중에 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B씨처럼 말끝마다 부정어를 남발하면 결국 이런 말을 듣는다. "그 사람은 피곤해. 대화가 안 돼. 별로 보고 싶지 않아."

◆부부 사이의 '넘겨짚기'식 대화

부부 사이도 다를 게 없다. 다툼이 잦은 부부일수록 '아니' '틀렸어'라는 부정어가 난무한다. 서로를 잘 안다는 오해 속에서 '넘겨짚기'가 성행한다. 대화는 어느덧 엉뚱한 산꼭대기로 향하고, 서로 다른 산 정상에 올라서 "당신과는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라며 핏대를 세운다. 장을 보던 한 부부의 대화를 들어보자. 아내는 "10만원을 들고 와도 살 게 없네."(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뜻)라고 말하자 남편은 "형편껏 사는 거지. 남들도 똑같아."(월급 작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뜻)라고 응수한다. 이런 대화도 있다. 아내가 "당신은 요즘 행복해?"(고민이 있으면 말해 봐. 들어줄게)라고 묻자 남편은 "행복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냥 사는 거지."(쓸데없이 불만 털어놓지 마. 틈만 있으면 불평불만이야. 제발 좀 조용히 살자)라고 말꼬리를 끊어버린다.

부부끼리 '넘겨짚기'식 대화를 한다는 데 대한 연구결과도 있다. 부부는 대체로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남보다 말이 더 잘 통하고 대화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보다 그다지 나을 게 없다는 것.

올 초 미국 '실험사회심리학 저널'에 한 실험결과가 소개됐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윌리엄스칼리지 심리학과 케네스 사비츠키 교수는 부부 22쌍에게 서로 등을 돌리고 앉은 뒤 배우자가 건넨 다소 모호한 말이 무슨 뜻인지 맞히는 게임을 했다.

실험에 참여한 부부들은 배우자의 말을 전혀 엉뚱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아내가 남편에게 에어컨을 켜라는 의미로 "여기가 좀 덥다"고 말하자 남편은 아내의 말을 성적 암시로 받아들였다는 것. 연구진은 "부부가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확신하지만 낯선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자기의 말 습관을 제3자 입장에서 곰곰이 곱씹어봐야 한다. 습관적인 부정어의 남발은 지나친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이고, 넘겨짚기식 응대는 자기를 비난한다는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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