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중학교 3학년인 K(15) 군은 지난해 한 해 동안 같은 독서실에 다니는 같은 학년 5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돈을 빼앗겼다. 독서실과 인근 공원에서 주로 괴롭힘을 당했다. K군이 폭행을 당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부모는 K군의 학교에 곧장 알렸다. 하지만 학교 측은 가해 학생이 다른 학교에 다니는데다 방과 후이고 학교 바깥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K군 부모는 학교 측에 피해 규명을 위한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해 학생들의 학교도 증거가 없다며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었다. K군 부모는 "학교에서 도움을 받지 못해 외부의 청소년상담센터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육 당국의 학교 폭력 방지 대책이 겉돌고 있다. 상담교사도 턱없이 부족하고, 매뉴얼 등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도 허술, 실효성도 제로
대구지역에는 학교 폭력 방지를 위한 상담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초'중'고를 모두 합쳐 430개 학교 중 상담인력이 배치된 학교는 175개 학교에 불과하다. 이 중 전문상담교사는 38명(중 22명, 고교 8명, 교육청 8명)에 불과하고, 1년씩 계약하는 비정규직인 전문상담 인턴교사가 150명(초 37명, 중 67명, 고교 41, Wee센터 5명)이다. 나머지 225개 학교에는 전문 상담인력이 전혀 없다. 대신 일반 교사들이 상담 교사직을 맡고 있지만 전문성 부족으로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은 또 학교 폭력 및 성폭력 상담을 위해 5개의 Wee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담을 원하는 학생에 비해 숫자가 적어 즉각적인 상담이 쉽지 않다.
학교 폭력 방지 제도도 허울뿐이다. 대구시교육청은 시내 전 교사들에게 '학교폭력'성폭력 예방 매뉴얼 북'을 배포했고, 학생들에게 명함형 매뉴얼 북을 배포했지만 교사나 학생들에게도 실효성 있는 지침서가 되지 못하고 있다. 또 법적으로 학기별로 1회씩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하게 돼 있지만 강사의 자격 조건이 명문화되지 않아 비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기 일쑤다. 학교폭력예방센터 김건찬 사무총장은 "전문성 없는 강사가 나서거나, 단순히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끝내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A군이 자살한 학교도 시청각 자료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이 이처럼 제도적으로 허술하면서 학생들도 상담을 외면하고 있다. 교사들도 학교 폭력을 숨기려고 하고, 학생들도 친구들 눈 밖에 날까 상담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달서구의 한 중학생 박모(16) 군은 "학교에 Wee 상담소가 있지만 학교 폭력이나 '왕따' 고민이 있어도 절대 찾지 않는다. 괜히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가 일진 학생들에게 찍힐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사들 인식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학교 폭력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교폭력예방재단 이호숙 소장은 "학교가 주기적으로 폭력 실태 조사를 해서 공론화를 해야 한다"며 "외부 상담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외부로 드러내는 학교가 숨기는 학교보다 학교 폭력이 많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참교육학부모회 문혜선 상담실장은 "교직 이수 때 인성'심리 상담을 이수하고, 지속적으로 관련 연수를 받는 교사들이 입시 등 현실을 핑계로 상담 업무에는 소홀하다"며 "이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도 자연히 왕따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남대 이지민 교수(가족주거학과)는 "학교에 배치된 상담교사 중 일부는 자원봉사자 등으로 자격이나 경험이 미숙한 경우가 많고, 상담이 형식적인 것에 그치기도 해 오히려 상담으로 학생이 상처를 받기도 한다"며 "제도만 갖춰놓을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모든 시간 동안 열의와 애정을 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창환 lc156@msnet.co.kr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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